내실 다지며 공격 경영… 에너지-유통-건설 강자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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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12> 안목경영 돋보인 GS그룹

65(구씨) 대 35(허씨).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의 거부(巨富)였던 허만정은 1946년 사돈이 된 LG 창업회장 구인회에게 35%의 비율로 창업자금을 지원했다. 이 자금은 이듬해인 1947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우는 밑천이 됐다. 사업이 커지자 두 집안은 각자 낸 원금에 따라 비율을 정했다. 이 지분은 두 집안이 반세기 넘게 동업 관계를 유지해온 비결이 됐다. 2000년대 초 GS가 LG에서 계열 분리할 때도 복잡한 지분 관계를 놓고 어떤 잡음도 나오지 않았다.

LG와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된 GS는 2005년 정유·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15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거듭났다. 분리된 지 15년 만에 GS는 에너지·유통서비스·건설을 3대 축으로 64개 계열사를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매출 가운데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절반(36조 원)을 넘어섰다. 조용한 듯 공격적으로 사업을 펼치는 ‘내실 경영’과 신사업을 발굴해 적극 투자하는 ‘안목 경영’이 GS가 퀀텀점프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 조용히 사업 넓히는 내실 경영


신문물에 적극적이었던 집안에서 자란 허만정은 셈에 밝았다. 돈 되는 사업에 투자하며 재산을 불려 다른 사업에 투자했다. 하지만 구씨와의 동업에 있어서는 경영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는 “경영은 구씨 집안이 알아서 잘할 테니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고 자식들에게 당부할 정도로 조용히 재무, 회계 등의 안살림에 집중했다.

내실을 다지면서 사업 영역을 넓혀온 허씨 집안의 가풍은 GS의 경영 철학으로 이어졌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이 2005년 그룹 출범식에서 제시한 슬로건은 ‘밸류(가치) 넘버원 GS’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모든 의사 결정이 이사회에서 이뤄지는 ‘이사회 중심의 자율 경영’과 ‘전문경영인 중심의 책임 경영’ 등을 강조했다.

외형 확장에는 좀더 공격적이었다. 2000년대 글로벌 경제위기로 불황이 길어지는 시기에도 GS는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09년 ㈜쌍용을 인수하며 출범한 GS글로벌은 해외사업 확장의 플랫폼이 됐다. 2012년 GS에너지를 설립한 이후에는 2013년 신평택발전, 청라에너지 등 활발하게 인수합병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발전사업에서는 ‘뚝심 경영’을 발휘했다. 2005년 LG에너지를 인수해 GS EPS를 출범시킨 GS는 이후 발전소를 늘려가며 2017년 민간 발전사 가운데 발전용량 1위에 올랐다. 허 명예회장이 “필요한 투자를 두려워하거나 실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강조한 성과다. 수익성을 중심에 둔 판단은 때로 과감히 포기하는 결정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2008년 대우조선 인수를 포기한 게 대표적인 예다. 2010년에는 편의점과 슈퍼에 집중하기 위해 GS리테일의 백화점과 마트 부문을 매각하기도 했다.

허 명예회장은 공격 경영의 하나로 글로벌 경영을 추진했다. 2011년 9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GS그룹 사장단 회의는 그룹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서 열렸다. GS그룹 해외 사장단 회의가 GS의 글로벌 경영에 ‘마중물’ 역할을 해오면서 2017년 GS에너지와 GS글로벌이 ‘BSSR석탄광’ 지분 인수를 통해 인도네시아 석탄 생산광 사업에 진출했고 GS리테일의 슈퍼마켓과 편의점이 각각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 신사업 알아보는 ‘안목 경영’


지난해 말 허 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허태수 그룹 회장은 해외시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경영 전반에 반영하는 그룹의 ‘센서’ 역할을 해왔다. 그는 2007년부터 GS홈쇼핑을 이끌며 여러 통념을 뒤집은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 2010년에는 GS홈쇼핑이 보유했던 케이블 방송을 모두 매각해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모바일 사업에 투자하며 홈쇼핑의 모바일화를 주도해왔다. 2007년 GS홈쇼핑 대표이사 취임 이후 홈쇼핑 업계가 저가 경쟁을 벌이자 과감하게 트렌드 리더 홈쇼핑을 내세우며 패션 중심으로 품질 경쟁을 주도한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이런 안목과 과감한 결단으로 GS홈쇼핑은 2017년 12월 홈쇼핑 시장 최초로 취급액 4조 원을 달성했다.

허 회장은 평소 “기업경영이란 외부 생태계의 변화를 빠르게 인식하고 대응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그의 이런 소신은 스타트업과 협력,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허 회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지에 자회사 GSL 랩스를 설립해 직원들이 최신 실리콘밸리의 기술과 혁신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GS홈쇼핑 직원 위주로 시작된 이러한 혁신교육은 여러 계열사의 요청으로 그룹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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