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SF 영화 ‘트웰브 몽키스’(1995년 작)에는 ‘에코테러(eco-terrorism)’가 소재로 등장한다. 지표면 오염으로 암담한 생활을 하는 미래의 지구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온 남자가 지구 멸망이 에코테러리스트의 소행이란 의심을 갖고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좌절한다. 에코테러는 환경 보호를 명분으로 저지르는 범죄로, 유전 방화 등 환경 파괴를 통해 공포를 조성하는 환경 테러(environmental terrorism)와는 명확히 다르다. 미국과 유럽에서 에코테러는 이제 영화 속 얘기가 아니다. 지난달 25일 새벽 미국 시애틀 근교의 신축 호화주택촌에서 발생한 화재도 ‘지구해방전선(ELF)’이라는 단체의 방화일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꿈의 거리’라는 이름의 이 주택촌은 정원수 절약 시스템, 재활용 목재 사용 등 환경친화적으로 개발된다고 업자들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연어 산란지인 시냇물 상류에 주택촌을 개발하면 비버댐이 파괴되고 숲과 습지가 사라진다며 반대해 왔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완성된 시범주택 5채가 이날 동시에 불길에 싸인 것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현장에서 환경 파괴를 비난하는 ELF 명의의 선전물을 수거했다. 1992년 영국에서 결성된 ELF는 자매단체 격인 동물해방전선(ALF)과 함께 최근 미 연방정부로부터 특히 경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에코테러 조직이다. FBI는 이들 단체가 지도부와 가입 회원 등 실체가 있는 조직이라기보다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느슨한 연대로 보고 있다. ABC방송과 뉴욕타임스 등이 FBI 자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04년까지 파악된 미국 내 에코테러 범죄는 1200건 이상이며 2003년 이후 재산 피해액은 2억 달러로 추산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