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머니 넘치는 러 “현금 관리 스트레스”

  • 입력 2008년 4월 1일 02시 53분


국민들 저축대신 현금 선호

도둑 잇따르자 대책 골머리

러시아 모스크바 남쪽에서 시계가게를 운영하는 마리야 리아피나(54·여) 씨는 지난주 높이 1.3m짜리 철제 금고를 집 안 세탁실에 들여놓았다.

세금을 뺀 월 소득이 5000달러(약 500만 원) 안팎이라는 그는 “이웃들이 현금을 도둑맞았다는 얘기를 듣고서 (도둑이) 쉽게 들고 나갈 수 없는 금고를 샀다”고 말했다.

고유가와 경제성장으로 주머니가 두둑해진 러시아인들이 현금을 관리하느라 애먹고 있다.

러시아 경찰은 110만 루블(약 3900만 원) 이상의 현금을 갖고 있다가 도난당한 사고가 매년 40%씩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특히 무인 현금인출기나 환전소에서 돈을 찾거나 바꾸다가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인들은 전통적으로 현금을 선호하며 이 같은 경향은 최근에도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2006년 러시아 주간지 엑스페르트가 월 소득 700∼1200달러인 중산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을 외화로 바꾸거나 집 안에 보관하는 사람이 31%로 은행에 저축하는 사람(16%)보다 훨씬 많았다.

러시아 민간은행인 알파방크의 수석 분석가 나탈리야 오를로바 씨는 “1998년 러시아 정부의 모라토리엄(대외부채 지불유예) 선언 당시 은행들이 파산해 맡긴 돈을 되찾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이때의 악몽을 여전히 지우지 못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최근 오일머니 유입으로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 러시아인들의 현금 관리 스트레스는 199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했다는 것이 은행 직원들의 설명이다.

러시아 통계청의 최근 조사 결과 지난해 12월 러시아인들의 가처분소득(총소득에서 세금을 뺀 금액)은 3년 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러시아 경찰은 은행에서 100만 루블 이상을 인출할 때 경찰에 보호를 요청하거나 무장 경비원을 동행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지난달 20일 제출했다. 모스크바에서 두 명의 무장경비원을 고용할 경우 한 달에 7만 루블(약 274만 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인권단체들은 “이 법안은 헌법에 보장된 사유재산 처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현금 보유자에게 추가 비용을 전가하는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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