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88만원세대’의 분노

  • 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5분


EU지역 월급 700유로 받는 비정규직 청년층

25세이하 실업률 15.9%… 국경넘는 시위 촉발

프랑스의 한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한 오를리앵 바스마유세 씨는 몇 차례 인턴으로 전전하다 최근 초등학교에서 임시직을 얻었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인턴이라는 이유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3개 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한 이탈리아 대졸자는 놀이공원에서 3개월짜리 임시직을 얻었다. 어렵사리 직장을 구해도 대우는 형편없다.

프랑스의 한 로펌은 최근 채용공고에서 월급 700유로(약 130만 원)를 제시했다.

유럽에서 ‘700유로 세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미국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가 23일 전했다. 700유로 세대는 월 700유로에 비정규직, 임시직으로 일하는 30세 이하 청년층을 뜻하는 말. 한국의 ‘88만 원 세대’의 유럽판인 셈이다.

2년 전만 해도 ‘1000유로 세대’로 불렸지만 글로벌 경기침체로 처우가 악화되면서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졌다.

10월 유럽연합(EU) 27개국의 평균실업률은 7.1%. 하지만 25세 이하의 청년실업률은 두 배가 넘는 15.9%에 이른다. 특히 스페인(28.1%) 슬로바키아(20.9%) 프랑스(20.3%) 등의 청년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부모 세대에 당연시됐던 풍족한 삶과는 거리가 먼 이들은 분노를 키워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 시위 사태가 확산된 것도 이 같은 청년세대의 좌절이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청년들의 분노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연대 시위로 이어졌다. 최근 그리스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언제든 계기만 있으면 유럽 전역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올해 여름 프랑스에선 석사학위를 받고도 8년간 식료품 가게에서 일한 청년의 사연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2005년 파리 시위를 주도했던 말콤 하메 씨는 프랑스 청년 110만 명이 저임금 또는 무임금으로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기대와 현실의 괴리가 점점 커지면서 청년들이 괜찮은 삶에 대한 꿈을 포기하고 있다”고 안타까운 현실을 전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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