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詩교수’ 9일천하

  • 입력 2009년 5월 27일 02시 49분


패덜 “경쟁자 성추문 내가 폭로” 사퇴

영국 최고 명문 옥스퍼드대의 영예로운 ‘시(詩) 교수(Professor of Poetry)’ 자리가 진흙탕 싸움터로 변질되면서 명예에 큰 상처를 입었다.

여류 시인으로는 3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시 교수에 선출된 루스 패덜 씨(63·사진)가 상대 후보를 중상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끝에 선출된 지 9일 만인 25일 끝내 사퇴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옥스퍼드대의 시 교수 자리는 시와 문학계 인사들이 탐내는 최고의 명예직으로 임기는 5년이다. 특히 올해는 1708년 시 교수 자리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여성이 선출돼 큰 관심을 받았으나 패덜 씨가 경쟁자의 불명예스러운 전력을 언론에 몰래 알린 사실이 드러나 결국 사퇴하게 됐다고 방송은 전했다.

당초 시 교수 자리의 유력한 후보는 서인도제도 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서사시 ‘오메로스’를 쓴 199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데릭 월컷 씨. 그러나 25년 전 미국 하버드대 재직 당시 여제자와 성추문에 휩싸인 전력이 갑작스럽게 부각되면서 스스로 후보에서 물러났다. 시 교수 선출권을 가진 교수들에게 성추문 논란을 알리는 익명의 e메일이 100통 이상 배달되면서 월컷 씨는 큰 고통을 받았다. 패덜 씨는 2명의 기자에게도 상대후보에 관한 성추문 의혹 내용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패덜 씨는 사퇴를 결심한 날 발표한 성명에서 자신이 기자들에게 e메일을 보낸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알려진 정보를 전달한 것일 뿐 상대 후보를 중상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패덜 씨는 “나쁜 마음에서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나의 행동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사퇴 배경을 밝혔다. 옥스퍼드대 측은 패덜 씨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패덜 씨를 후보로 추천했던 런던대 버크백칼리지의 AC 그래일링 교수(철학)는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여성이 옥스퍼드대의 시 교수가 되는 것은 진정으로 멋있는 일이지만 상대 후보와의 경쟁이 야비한 방식으로 이뤄져 매우 실망스럽다”고 안타까워했다. 옥스퍼드대는 현재의 시 교수 임기가 끝나는 올여름 이전에 선거를 실시해 새로운 당선자를 선출할 계획이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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