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 혐의로 이란 법정에 선 한 프랑스 여대생의 재판 동영상이 프랑스 여론을 들끓게 하고 있다. 피고는 지난달 초 이란 대선 불복 시위에 동참했다가 체포된 클로틸드 레스 씨(24).
이란의 한 대학 연구원으로 다섯 달째 파견돼 있는 그녀는 시위 장면을 촬영하고 1장짜리 이란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이란 전복을 시도하는 스파이’로 몰렸다. 그녀의 아버지가 프랑스의 핵 엔지니어라는 점도 그녀가 이란의 핵 개발 관련 정보를 빼내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부추겼다. 10일 열린 재판에서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차림의 레스 씨는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며 이란 법원과 정부에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불법행위에 개입한 것이 실수였음을 깨닫고 이란 국민에게 사과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변호사는커녕 외국인 방청객도 없이 이란 공무원과 법정 경위들에게 둘러싸인 채였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1일 “누군가가 작성해준 진술서를 읽도록 강요당한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전했다.
재판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자 프랑스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이란 내 자국 여성의 체포에 대해 서둘러 손을 쓰지 못한 프랑스의 외교적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겨냥해 선거 부정 가능성을 제기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보고 있다. 비난에 직면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서둘러 휴가를 끝내고 이번 사안에 최우선적으로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엘리제궁은 “대통령은 레스 씨 사건을 극도로 민감하게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할 수 있는 모든 외교적 방안을 동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장관도 “이란이 무고한 프랑스 여성에게 유죄 인정을 강요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재판을 비난했다.
최근 이란 감옥에서 여성들이 강간당했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여서 레스 씨의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같은 비난을 의식해 이란 당국은 레스 씨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프랑스 대사관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11일 AFP통신이 전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