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남편의 납치·강간 도운 그녀가 진짜 악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9월 12일 15시 06분



'성폭행범과 결혼하는 여성은 어떤 사람일까? 게다가 남편이 소녀를 납치해 강간하는 걸 돕고, 소녀를 뒷마당에 가둬놓고 아기까지 낳아 키우게 했다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당시 11세였던 소녀를 유괴해 18년간 감금해 성 노예로 삼았던 필립 가리도(58)와 그의 아내 낸시 가리도(54) 부부의 행각에 국내외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아내 낸시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1991년 6월 당시 11살이었던 제이시 리 두가드는 캘리포니아주 레이크 타호 인근 집 앞에서 납치됐다가 최근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두가드는 성폭행을 당해 납치범의 두 딸(15·11세)을 낳았으며, 이 아이들도 학교는커녕 병원 한번 가 보지 못한 채 완벽히 고립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낸시 가리도는 같은 여성이면서도 적극적으로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외신에 따르면 유괴 당시 어린 두가드를 붙잡아 자동차 안으로 밀어 넣은 것은 남편이 아닌, 낸시였다. 남편은 운전석에서 운전을 맡았다. 1993년 가리도가 가석방 위반으로 40일간 구금돼 집에 없었을 때도 낸시는 13살 두가드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소녀를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했다. 이듬해 소녀는 14살 어린 나이로 임신, 출산을 했다. 4년 뒤에는 둘째딸(14)을 낳았다. 1993년 낸시가 마음을 달리 먹었더라면 소녀가 납치범의 아이를 낳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쇄업을 하는 가리도와 십여 년 알고 지냈다는 한 거래처 사장은 "어떤 면에선 낸시가 진짜 악마"라고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재 가리도와 낸시는 납치와 강간, 불법감금 등 29건의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관들은 아내의 죄가 남편보다 가볍지 않다며 낸시가 납치 외에도 두 건의 강간, 세 건의 질 나쁜 성추행, 네 건의 폭행 강간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낸시가 과거부터 문제 인간이었던 것은 아니다. 남편쪽은 강간, 납치 전과가 있는 데 비해 낸시는 전과가 없다. 약물을 한 것도 아니다. 가리도는 과거 코카인, 알코올, 마리화나를 복용하고 성폭행을 저지른 적이 있으며, 1970년부터 1974년 사이 LSD 약물을 복용한 전력이 있다. 최근에도 주변에 천사의 말을 듣는다고 주장하는 등 이상 증세를 보여 온 것으로 나타났다.
과연 낸시는 어떤 사람일까. 1955년 텍사스에서 태어난 낸시 보카네그라(낸시 가리도의 처녀시절 이름)는 1981년 캔자스 레번워스 교도소에 삼촌을 면회 갔다가 '꿈에 그리던 남성'을 만났다. 당시 가리도는 키 크고 호리호리한 몸매에 짙은 색 눈동자를 가진 잘 생긴 '성폭행범'이었다.
가리도는 1976년 레이크타호 지역에서 20대 여성을 납치, 감금, 성폭행한 혐의로 연방법정에서 50년 형을 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이 밖에도 1972년 14세 소녀를 겁탈한 적이 있다. 낸시도 남편의 성범죄 전력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인정받았던지 가리도는 복역 11년 만인 1988년 가석방됐다. 부부는 가리도의 노모가 사는 캘리포니아 안티옥 집으로 이사 갔다. 낸시는 1989년 간호조무사 자격증(Certified Nursing Assistant)을 땄고, 가리도는 인쇄업자로 일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부부였다.
두가드를 납치한 지 3년 된 1994년 12월, 낸시는 지역 공공 의료기관에 간호조무사로 취직해 1998년 3월까지 근무했다. 이 기관의 원장과 예전 동료는 낸시가 일을 아주 잘했고, 장애인 팬을 몰고 다닐 정도로 환자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높았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낸시와 일한 사람들은 그녀를 좋아했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1998년 두가드가 둘째 딸을 낳았을 무렵 낸시는 말없이 일을 그만뒀다.
그러나 집에서의 낸시의 모습은 달랐다. 낸시는 이웃에게나, 남편의 사업 파트너들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 이웃은 "부인은 조용했고,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했고, 가리도의 인쇄업 고객은 "가리도가 배달 왔을 때 누군가 차에 있었지만 이름은 모른다"고 말했다. 남편의 형 론 가리도는 "낸시는 로봇 같았다"고 평가했다. 다만, 한 70대 이웃 할머니는 낸시가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등 좋은 여자였다고 말했다. 또한, 낸시가 자신의 고양이를 예뻐해서 자기 집 마당에서 놀게 했고, 개를 키우던 이웃 노인이 요양원에 갔을 때 개를 맡아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낸시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폭력적인 남편이 세뇌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낸시의 남동생은 누나가 2년 전 가족과 만나려 했지만 가리도가 강압적으로 막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낸시가 '학대당한 여성 증후군'을 보인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미국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대학의 마이클 로드리게스 교수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여성은 유소년기에 학대를 받은 경험이 많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장기간의 반복적인 가정폭력을 당한 여성은 가해 남성을 전능한 존재로 생각해 구타를 감내하거나, 다른 약한 대상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한다.
1970년대 부부가 함께 10명의 여자 아이를 살해한 '프레더릭 웨스트' 사건에 대한 책을 쓴 제프리 완셀은 데일리메일에 "낸시 피고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교묘하게 조종당했을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무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스스로의 의사로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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