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지문 자국 하나가 1만2000파운드(약 2208만 원)짜리 그림을 무려 8333배 이상인 1억 파운드(약 1839억8000만 원) 가치를 지닌 걸작으로 탈바꿈시켰다. 르네상스 시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것으로 확실시되는 새로운 인물화 이야기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문제의 작품은 색연필과 펜, 잉크로 그려진 가로 23cm, 세로 33cm 크기의 작은 인물화로 ‘르네상스 시대 의상 차림의 젊은 여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한 독일 화가가 그린 것으로만 알려졌던 이 그림은 199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 매물로 나와 뉴욕의 거래상 케이트 갠즈 씨에게 1만2000파운드에 팔렸다. 이후 2007년 같은 가격에 캐나다 출신 미술품 감정가 피터 실버먼 씨에게 넘어갔다. 그는 “처음엔 누군가가 다빈치 기법을 본떠 그린 것으로 생각했으나 막상 그림을 본 순간 진짜 다빈치가 그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가슴이 떨렸다”며 정밀 감정을 받기로 결정했다. 그의 육감은 맞았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13일 많은 고미술 감정 대가가 “다빈치 작품이 확실하다”는 데 동의했다며 국제 고미술계가 흥분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품과 모조품을 가른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인물화 왼쪽 상단에 남아 있는 지문이었다고 한다. 감식전문가 피터 폴 비로 씨는 다중분광 카메라라는 혁신기법을 활용해 진품 논란을 결정적으로 잠재웠다. 인물화에 남겨진 지문이 중지 또는 검지의 끝부분으로 로마 바티칸 성당의 ‘성(聖) 예로니모’에 찍힌 다빈치의 지문과 ‘매우 유사한’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성 예로니모는 다빈치의 초기 작품으로 당시 다빈치는 조수를 둘 만한 경제적 형편이 되지 않아 지문은 다빈치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밖에 탄소연대 측정 결과 그림을 그린 시기가 1440∼1650년으로 다빈치의 활동 시기와 겹치고 작가의 기법을 분석한 적외선 분석 결과도 다빈치 것과 일치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마틴 켐프 명예교수(미술사) 역시 “이 인물화가 다빈치의 작품임을 확신한다”며 감정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 책까지 최근 완성했다고 밝혔다. 켐프 교수는 아울러 인물화의 제목도 ‘아름다운 왕녀’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르네상스 의상을 입은 젊은 여인이 실은 밀라노공국을 다스렸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1452∼1508)의 딸 비앙카 스포르차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켐프 교수는 “인물화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다”며 “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에 걸맞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 그림은 내년 스웨덴 전시회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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