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제프리 데린저/학연 너무 따져

  • 입력 1999년 2월 21일 19시 40분


어느 나라에서나 고객 관리는 사업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에서 사업을 배운 나로서는 한국에서 고객관리를 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미국에서 사업 관계는 얼마나 함께 일을 잘 할 수 있는지에 의해 좌우된다. 물론 부분적으로 같은 학교를 나왔고 동향 출신이라는 점이 사업상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같은 대학, 같은 고교 출신이라는 데 비중을 둔다. 오죽하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까지 나서서 특정고교 동문끼리만 뭉치지 말라고 말하겠는가. 클린턴대통령은 이런 걱정을 안해도 된다.

한국에서는 식사 등 사교생활을 중심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 더 쉽고 바람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업관계가 일터에서 출발해 사교적 관계로 발전한다. 한국에서는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인 것 같다.

지난 2년반 동안 한국에서 사업을 하며 업무처리에서 개개인의 재량권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개인이 재량권을 갖고 융통성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의사결정 및 협상 과정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의 또 다른 어려움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일들이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보고서나 편지 준비 같은 간단한 일도 미국 본사에서처럼 쉽게 처리되지 않는다. 심각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일이 축적되다 보면 사업 전체의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의사소통의 장벽도 한국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들에게 큰 어려움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은 거의 없다.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한국인은 영어로 읽고 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늘 상대편 한국인에게 내가 영어로 말한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물어서 확인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결례가 될 것 같아 이 절차를 빠뜨렸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만일 70% 이상 이해했다면 괜찮지만 보통 여기에 못 미친다.

한국사람들은 외국인들이 영어로 말한 것을 전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너무 쑥스럽게 여긴다. 거래관계로 만난 한국인이 영어로 한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는 핵심 사항을 글로 적어 보여주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고 혼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통역을 활용할 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논의하는 내용이 극히 전문적이지 않다면 통역이 효율적이다.

전문적인 기술을 논의하는 자리라면 통역에게 내용을 미리 알려주고 외국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적 내용을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자신이 말한 것을 한국인 상대방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한국 기업에는 장점도 많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 고언을 몇마디 해보았다. 입에 쓴 약은 몸에 이롭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융통성을 갖고 한국의 사업관행을 존중하며 자신의 논지를 확실히 전달할 수 있도록 시간을 투자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제프리 데린저<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 한국지사부사장>

△58년 미국 켄터키주 출생 △켄터키대 졸업(회계학 전공), 켄터키대 경영대학원 MBA △86년∼현재 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쿠퍼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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