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2002년 월드컵」준비 불구경 하듯

  • 입력 1999년 5월 4일 19시 33분


올해로 27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 국민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그러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출간한 지 5개월 가량이 지난 지금 그런 자신감이 크게 흔들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책 제목과 달리 지금까지 나는 ‘맞아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있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분들이 나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한국 사람들이 유난히 인정 많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얼마전 나이지리아에서는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좋은 성적을 기대했던 한국 대표팀이 뜻밖에 예선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많은 분들이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반대로 일본팀이 예상외로 선전을 펼친 것을 두고 나더러 “당신은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축구 경기야 어차피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것이니 성적 자체만 놓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일본도 아시아지역 예선에서는 한국에 졌던 팀이다.

한국과 일본은 공히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고 마냥 편안하게 생각할 수만 없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다. 바로 2002년 월드컵이 그것이다.

이번 나이지리아를 보자.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주최측의 능력에 의문을 표했다. 무더운 기후나 풍토병의 위험성 같은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주최측이 조금만 더 신경을 쓰고 노력했다면 한국 국기를 북한 인공기로 내거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한국은 88년 서울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른 나라이니 나이지리아와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한국 국민 사이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라는 경제적 어려움속에서 계획대로 월드컵을 치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나름대로 유심히 지켜보니 2002년 월드컵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간에는 일본에 비해 한국의 월드컵 경기장 건설 속도가 느리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기장이야 어차피 대회 개막 전까지 완공해서 무사히 경기를 치를 수 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일본에는 월드컵이라는 이벤트 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상품시장으로 생각하고 그 시장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당장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축구대회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막상 대회가 코 앞에 닥치면 한국 국민은 특유의 오기와 집중력을 발휘해 훌륭하게 대회를 치러낼 것이다.

월드컵은 돈으로 따져서 10조원 이상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지닌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이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물론 월드컵의 경제적 혜택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일반 국민까지 신경을 더 써야 할 것 같다.

이케하라 마모루<일본 오사카 라센관공업 고문>

▼약력

△35년 일본 도쿄 출생 △58년 일본 와세다대 정치학과 졸업 △61∼65년 중의원 보좌관 △72년∼현재 한일(韓日)경협관련 업무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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