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경쟁은 사회를 진보시키는 원동력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에서 경쟁이 엉뚱한 모습으로 표현될 때도 있다.
얼마 전 서울 정동 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었다. 앞에 정지한 택시 문을 열기 위해 뻗은 내 손을 앞질러 다른 손이 번개처럼 문을 열었다. 당연한 듯 새치기한 두 남녀를 태운 택시는 이내 출발했다. 어정쩡하게 서서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옆에 있던 한국 친구들은 “내버려 둬.
늘 있는 일인데 뭐. 널린 게 택시잖아”라며 사람 좋게 웃어 넘겼다. 한국처럼 예(禮)를 중요시하는 나라에서 이게 웃고 넘길 일이라니….
한국인 직원들과 친구들은 서울 생활을 하다 보면 서로 밀고 밀리고 새치기 당하는 것에 대해 내성(耐性)이 생긴다고 얘기했다. 어떤 사람들은 한 술 더 떠 “이러한 ‘경쟁’은 바쁘게 사는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까지 말했다. 이렇게 납득할 수 없는 자기합리화는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몇 주 전 일요일. 서울 도심의 한 백화점에 쇼핑을 갔다가 곧 백화점에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세일기간이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백화점을 가득 메웠다. 통로를 걸어다니면서 우리 가족은 쉴새없이 밀리고 부딪히고 밟히기를 반복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누구 하나 “미안하다”고 말을 하거나 사과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없었다. 흡사 백화점 안의 사람들은 온갖 장애를 헤치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군인’들과도 같았다.
택시를 탈 때나, 백화점에서는 그나마 ‘목적’이라도 있다. 얼마 전 한가한 길거리에서 유럽 친구들 3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한국인이 그 넓은 길에서 오직 ‘자기가 직선으로 걷는 코스’에 우리가 서 있었다는 이유로 유럽인 친구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 사람은 잠시 후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걸어오면서 우리 일행을 또 치고 지나갔다.
“실례했습니다”라는 말은 못알아 듣는 언어로 해도 뜻이 통한다. 뻥 뚫린 길이었을지언정, 그 사람이 이 한마디만 했더라도 우리는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침묵을 금으로 여기는 한국인들이 이 사소한 한 마디를 너무 아끼는 바람에 ‘한국인은 무례하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아지는 것이다.
서울처럼 복잡하지만 주위 사람들을 밀치지 않고도 잘 사는 도시는 세계에 얼마든지 있다. 서로 밀치지 않기로 작정하는 것만으로도 서울이 수준 높은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우연히 부딪쳤을 때 “미안하다”고 서로 사과하는 모습을 서울에서 보게 될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이 그저 새 밀레니엄을 향해 ‘앞 다투어’ 뛰기만 하다 보면 한국의 문화수준은 그만큼 떨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폴 맥널리<그랜드하얏트호텔 객실담당 이사>
▽약력 △5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유레카시 출생 △훔볼트 주립대 졸업 △하얏트리젠시마우이 하얏트리젠시비버크릭 하얏트산호세 등에서 근무 △97년∼현재 그랜드하얏트서울 객실담당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