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고객 회사의 경영진 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 직원들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는 직원들이 회사의 정책수행에 적극적일 수 있도록 사내 의사결정 과정에 직원들을 참여시키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이었다.
서구에서는 사내 의사결정 과정에 관련자 전체를 참여시켜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각자의 의사를 표현하도록 장려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같은 업무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곤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별로 팀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거나 소극적이라고 느끼고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대로 외국인 경영진이 무능력하고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이같은 오해는 순전히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위계 질서가 엄격하다. 조직 내 개인의 역할도 명확히 정해져 있다. 회의를 하더라도 위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한 지침을 시달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서구적인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당황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결정은 사장이 할 일 아닌가? 우리한테 왜 자기 일을 시키는 거지? 이런 것도 해결할 자신이 없나?’ 이렇게 되면 직원들은 외국인 사장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존경심을 잃어버린다. 특히 외국인 경영진들은 한국 기준으로 보아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많아서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팀으로 일하기에 힘든 국민성을 지녔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지 팀워크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의 팀워크는 틀이 꽉 짜여 있다. 나이나 지위에 따라 각 조직원의 역할이나 임무가 면밀하게 정해져 있다.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대체로 팀에서 가장 연장자가 마지막 의사결정을 한다.
서양에서는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팀원간의 많은 상호작용과 참여가 이뤄진다. 이런 상호작용과 참여가 바로 팀워크이고 팀원간에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질 때 마지막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는 팀 리더의 결정이라기보다는 전체 팀의 결정이 되는 것이다.
두 시스템 모두 장점과 단점이 있다. 한국식은 결정이 빠른 대신 팀원들의 자발적 문제의식이나 동기유발이 약한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서양식은 시간은 더 걸려도 각 팀원이 더 책임의식을 느끼고 그 이행에 더 적극적일 수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 참여적 경영을 하고자 하는 외국인 경영진이라면 업무의 배경이나 목적, 진행 절차에 대해 한국인 직원들에게 잘 설명해서 오해나 갈등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한국인들도 외국인들과 일하면서 서구적 경영 스타일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한다면 서로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면서 최대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필립 티로〈T.A.O.코리아 사장〉
약력△59년 프랑스 출생 △프랑스 ESSEC 졸업 △84년 앵도수에즈 한국 지사 발령 △87년∼현재 T.A.O.코리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