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샌드라 로소/아이공부 대신하는 부모들

  • 입력 1999년 7월 13일 19시 49분


용산 미군부대 안에 있는 센트럴텍사스칼리지에서 한국 학생과 미국 학생을 가르치면서 나는 두 그룹의 학습 스타일이나 접근 방식의 차이를 주목했다. 3년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이러한 것이 단순히 한국과 서양의 교육 철학이나 구조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여겼다.

한국과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우수한 성적, 부모의 적극적 후원, 근면하면서도 교사를 존중하는 학생, 헌신적인 교사, 높은 기대 수준과 그 성취에 대한 강조 등으로 세계적인 부러움을 산다. 이런 것들이 암기 위주의 공부, 학생 상호간의 경쟁과 빈번한 시험을 통해 달성되고 있다.

이에 반해 서양의 교육은 시험 보다는 연구와 경험을 통한 학습을 중시한다. 교실에서는 학생과 교사 사이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개성과 창의성을 강조한다. 학생들의 상이한 학습 스타일에 맞추어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운용하며 한 학급 내에서도 개인차에 대해서는 매우 유연하고 수용하는 폭이 넓다.

나는 언어병리학 전문가다. 나는 치료대상 아이의 부모도 참석시켜 아이들을 위한 여러 개입 기법이나 치료 기법을 배우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서양인들은 자녀가 해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부분 자녀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수 있도록 기다린다. 틀린 답과 맞는 답을 스스로 알아내고 정상적인 언어 능력을 습득해 다음 단계의 학습이 가능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많은 동양계 부모들은 이러한 학습 과정을 매우 불편하게 느낀다. 아이가 정답에 다다르는 과정을 기다리기보다는 아이가 답을 할 때마다 중간에 끼어들어 자녀의 틀린 답을 고쳐주곤 한다.

내가 꽃꽂이를 배울 때도 그랬다. 선생님은 내가 잘하거나 올바르게 한 것에 대한 칭찬보다는 먼저 “그렇게 하면 안돼요”라고 제지한 다음 이유를 설명한다. 제대로 된 꽃꽂이를 해낼 때까지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직접 ‘나를 위해’ 꽃꽂이 작업을 해버리곤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내가 기여한 것은 사실상 거의 없지만 아주 아름답게 완성된 꽃꽂이 작품이 내 이름으로 남는 것이다.

나는 이같은 ‘도움’을 한국의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에게 헌신적으로 베푸는 것을 자주 본다. 이러한 도움은 그 자녀들이 서양 기준으로는 독립적으로 행동할 나이가 훨씬 지날 때까지도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학에서조차 부모가 자녀를 대신해 등록 양식을 작성하고 전공 과목을 선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언젠가 다른 가족과 함께 집에 돌아와 우리 아이가 집 열쇠를 열려고 했을 때였다. 어른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이지만 아이에게는 꽤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아이가 스스로 열 수 있도록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한국 친구가 자상한 미소를 띠며 열쇠를 갖고 있는 아이의 손을 쥔 다음 보기좋게 열쇠 구멍에 맞추어 아이가 열쇠를 넣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서양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탐구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려고 한다. 반면에 동양의 부모들은 문제에 이르는 방법을 자상스럽게 지도해서 아이가 포기하지 않고 더 어려운 문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는다.

샌드라 로소<센트럴텍사스칼리지 교수>

▼약력▼

△미국 미시간주 △75년 오하이오대 언어병리학 박사 △미시간주립대 등에서 교수로 재직 △현재 센트럴텍사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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