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조금 당혹스러운 도시처럼 다가온다. 너무 비대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인데다 길거리의 간판이나 교통체계도 낯설기만 하다. 언어 장벽은 외국인들은 무론 택시나 상점에서 외국인들을 대해야 하는 한국인들조차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고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 한국어라도 한두마디 하게 되면 외국인들은 유난히 산이 많은 이 나라의 아름다움과 문화를 보는 안목이 생기게 된다.
지난 2년간 서울에서의 외교관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다. 내 남편은 한 외국계 화학회사에 근무하고 있고 아홉 살짜리 아들 톰은 서울외국인학교에 딸린 영국학교에 다니고 있다.
부모를 따라 3년마다 이 나라 저 나라로 옮겨 다녀야 하는 외교관 자녀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들이 이런 국제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장차 이런 경험이 그에게는 '큰 무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계화 정책이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서울은 외국인들에게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세계 각국의 갖가지 음식을 취급하는 식당과 상점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이런 발전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국제적인 영향을 받을수록 도시의 생활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국제적인 도시중의 하나다. 세계 각국의 음식이 없는 것이 없고 문화도 다양하고 우수한 국제 인력이 넘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의 정체성이 훼손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역동적으로 변했다.
내가 서울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훌륭한 영어를 들을 수 있는 TV와 라디오를 접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BBC TV나 BBC FM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영어 미디어 선택권이 매우 제한돼 있다.
BBC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국제 뉴스를 접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언젠가는 차 안에서도 영국 영어를 들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외국인 투자유치는 물론 한국의 영어교육에도 큰 도움이 될텐데….
한국인들은 예의가 바르고 외국인들에게 무엇인가 도와주고 싶어한다. 나는 여성 외국인 외교관으로서 대접을 잘 받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여성들은 아직도 직장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특히 남자 동료들에 비해 승진 기회가 적은 편이다.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 퍽 다행이다.
한국은 과거 수십년간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지금도 눈부시게 변화하는 시기이다. 젊은이들은 인터넷 열풍에 뛰어들고 있고 닷컴회사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고유 문화를 지키는데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잘 안다.
통신의 발달이 국가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변화'는 모든 국가에 있어서 거역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한국의 국부(國富)가 커질수록 한국인도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연환경 보존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의 자연미를 사랑하며 많은 한국인도 이런 평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기쁘기 그지없다. 나는 북한산 속리산 금정산 설악산 등으로 산행을 많이 다녔다. 산행을 하면서 본 산수의 아름다움과 마음씨 착한 한국인들은 내 기억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로스 스패로<주한 영국대사관 2등서기관>
▼약력▼
△61년 영국 런던 출생 △83년 캐임브리지대 석사(현대언어) △83∼86년 영국 외무부 행정관 △86∼89년 방글라데시 대사관 근무 △89∼90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영국대표단 3등 서기관 △90∼97년 벨기에 싱가포르 등에서 근무 △98년 주한 영국대사관 정치 공보담당 2등서기관 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