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대북정책 모순▼
특히 최근 있었던 두 가지 사건에 서 남북관계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정책이 안고 있는 모순을 느겼다.
첫번째 사례. 서울에서 열린 탈북자지원대책위 세미나에서 50대 탈북여성이 이런 사실을 밝혔다. 함께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아들이 지난 해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직후, 아내를 데려오려고 다시 입북했다가 체포돼 심한 고문을 당했으며 결국 8월에 처형됐음을 목격자의 진술로 알게 됐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당시 남한 당국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자기 아들의 죽음을 공개하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두번째 사례. 최근 검찰은 미국 국적의 한국인 한 사람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김정일의 통일정책 이라는 책을 한국에서 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조총련 소속으로 밝혀졌다. 책의 내용 중에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문제시하고 북한군을 찬양하는 부분이 문제됐다. 검찰에 따르면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행위 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에 따라 무기징역 또는 사형까지 구형할 수 있다. 더구나 피고인은 평양에 가서 남한에서의 출판 방식까지 협의했으므로 형량은 더욱 무거워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냉전시대와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서 활용되던 국가보안법의 유령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땅을 떠돌며 희생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퍽 놀랍다. 냉전은 오래 전에 종식됐고, 새로운 국제정치 상황과 변화된 한반도 정세를 정책의 출발점으로 삼는 대통령이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적행위 라는 개념과 두가지 사례를 연관지어 생각하면, 첫번째 사례처럼 충격적인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남북간의 대화를 진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남한 당국자들 역시 북한을 이롭게 한 죄를 면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리고 지난 해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의 통치자를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괴물에서 호탕하고 통이 큰 엔터테이너 로 변신시키며 국민을 환호하게 만든 언론도 북한을 찬양한 죄 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아닐까?
이와 동시에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언론이 여전히 해묵은 표현방식을 동원해 북한 정부와의 거리감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금이라도 친북성향을 띤다는 의혹을 살까봐 두려워하기라도 한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언론은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을 정말 그렇게도 못 믿는 것일까? 북한의 비참하고 열악한 상황을 알고도 그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사람이 있을까?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미화시켜 놓은 북한의 정치체제에 혹할 사람이 있단 말인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당당하고 침착하고 안정돼 있어야 하며, 잠시 잘못된 길로 발을 헛딛는 개인들을 너그럽게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
▼언론, 북과 거리두기 안간힘▼
그리고 인간의 기본권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원칙을 악용하거나 스스로 저버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게르만 호흐(건국대 충주캠퍼스 객원교수·독어독문학)
약력=1950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대에서 고전어학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전공했다. 79년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고 프랑크푸르트 독일국립도서관에서 근무했다. 그 후 기센대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DaF) 과정을 밟아 86년 DaF 학위를 취득했으며 87년부터 8년 동안 프랑크푸르트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 강사로 근무했다. 95년 한국에 와 동덕여대 독어독문학과에 근무하다가 2000년부터 건국대 충주 캠퍼스 독어독문학과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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