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자식욕심 아들 낳은뒤 이해"

  • 입력 2001년 5월 8일 18시 42분


5년여 전 한국에 온 나는 평범한 한국인들의 눈에 좀 이상한 사람이었다. 저명한 독일 재단의 한국사무소 대표로, 그리고 큰 대학의 교수로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명함을 갖고 있었지만, 내 가정생활은 일반적인 한국의 관습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한국에 와 독일의 일상적인 표현대로 음식과 잠자리를 함께 했던 여성은 아내가 아니라 오래된 애인이었다. 게다가 둘 다 젊은 나이가 아니었지만 아이가 없었다.

▼아이없이 동거…눈초리 이상▼

이런 상황이 가져온 결과는 한국인들과의 수많은, 종종 창피하고 불편했던 대화로 나타났다. 나와 만난 한국인들은 나의 가정 상황과 관련해 이해할 수 없음과 동정심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반응들을 보였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가 없이 사는 것이 우리 둘의 이성적인 결정에 의한 것이라는 내 설명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보낸 지난 세월 동안 나의 이런 삶의 형태에 대해 동의하는 의견을 거의 듣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혼인하지 않고 자식도 없이 동거하는 것이 아주 흔한 생활형태라는 설명을 들은 한국인들은 종종 심리적 반감마저 나타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2년 전 여자친구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도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도 함께 밝히는 것은 한국에서는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출산이라는 소식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비록 마흔 다섯이란 늦은 나이에 이뤄진 일이라도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경이로운 경험이다. 아버지가 됨으로써 새 생명의 증인이 될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아이를 낳는 것과 가정생활에 한국 만큼 큰 의미가 주어지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것이라는 것이 나의 추측이다. 한국인들이 가정에 부여하는 큰 의미에 대한 설명은 잘 알려져 있고 그것은 한국의 유교적 전통과 조상을 섬기는 것과 관련돼 있다. 자녀가 많은 대가족은 과거 유럽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던 가족 형태다. 그러나 근대화가 진행되고 점점 작은 가족 단위로의 사회적 분열이 일어났다. 1인 가정과 혼자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은 오늘날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가정 형태다. 여기서 던져볼 질문은 과연 한국에서도 경제적, 사회적 발전과 함께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나와 아내는 아이를 한국에서 낳을지 고국으로 돌아가 낳을지를 놓고 고민했다. 독일에 있는 우리 가정 주치의는 납득할 만한 대답을 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출산을 담당하는 의료진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독일에서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나니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라는 조언이었다. 우리는 독일 의사의 조언을 따랐고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

태어난지 이제 넉달이 된 우리 아들은 아주 튼튼하고 건강하다. 좀 더 따뜻해지면 아이를 데리고 나가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자식과 관련해서는 본인이 이제 좀 한국화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예전에는 결혼여부와 자녀 수에 대한 한국인들의 질문을 피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내가 그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한국인에게 자식이 몇이냐고 묻고 상대방이 종종 고개를 숙인 채 자식이 없다고 대답할 때면 나 스스로도 이제 좀 안타깝게 느끼곤 한다.

▼"가정의 소중함 알것 같아요"▼

한국에서 이뤄진 내 작은 가정은 언젠가는 이 나라를 떠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세계화와 유동성의 시대에 당연한 과정일 것이다. 한국을 떠난 후에도 우리는 많은 이유 때문에 서울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한국이 항상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자리하게 될 가장 큰 이유는 한강이 가로지르는 이 서울에서 우리 작은 왕자가 처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다.

로날드 마이나르두스(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약력]1955년 미국에서 출생한 뒤 이집트 그리스 독일에서 성장했으며 함부르크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 벨레 라디오 정치경제부장과 그리스 지국장을 지냈고 국제관계와 외교정책 등에 관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1996년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로 취임했으며 1999년부터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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