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나가타 이키후미/“대입전쟁 너무 심해요”

  • 입력 2001년 12월 25일 17시 52분


11월 7일 한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것을 보고 그 다음 날 신문에서 수능시험 전 과목 문제들을 봤다. 객관식 시험인 문제의 수준은 일본에서 매년 1월 중순 이틀 동안 치러지는 대학입시센터시험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내가 놀란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인구가 일본의 3분의 1 정도인 한국에서 수능시험을 본 수험생의 숫자가 오히려 일본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한국에서는 수능시험 때 수험생들이 외국어 국어 수학 이과 사회과의 주요 다섯 과목을 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험생-시험과목 많아▼

이 두 가지에 있어서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르다. 먼저 일본에서는 국립 및 공립대학교는 모두 센터시험을 필수로 하고 있으나 사립대학교는 거의 센터시험을 필수로 하지 않는다. 사립대만을 지망하는 수험생들은 센터시험을 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일본의 사립대 인문계 입시는 외국어 국어 사회과만을, 자연계 입시는 외국어 수학 이과만을 각각 자기 학교에서 보는 것이 보통이다. 요즘은 유명 사립대에서도 과목을 두세 개나 심지어 한 개까지로 줄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수학을 모르는 경제학부생, 생물학을 잘 공부하지 않은 의학부생 등이 나오고 있다. 만일 일본에서도 한국과 같이 모든 대학이 주요 다섯 과목을 다 필수로 한다면 사립대를 지망하는 수험생 숫자가 줄고, 많은 사립대가 도산하거나 아니면 수준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일본에서는 국공립대학교에 지망할 경우 자기가 지망하는 대학이 필수로 하고 있는 과목만을 센터시험 때 치르면 된다. 도쿄대 등 수준 높은 국립대는 주요 다섯 과목을 다 필수로 하고 있지만, 지방 국립대의 경우는 필수과목 숫자가 적다.

사립대의 경우 몇 번이라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데(국립대의 경우는 보통 두 번) 반해, 한국에서는 가군 나군 다군의 세 번밖에 없다. 시험과목 수 및 시험기회 등으로 볼 때 한국의 수험생들은 일본의 수험생보다 부담이 많은 것 같다.

다만 시험과목 수에 관해서는 인문계 학생도 자연계 과목을, 자연계 학생도 인문계 과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한국식이 인문계 자연계를 아우르는 새로운 학문분야가 나오고 있는 시대에는 응용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일본식, 특히 사립대의 경우 자기가 잘 할 수 없는 과목이 있을 때도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과목만 있으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자기 개성을 살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어느쪽이 더 좋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판단이 어려운 것 같다.

한편 한국의 대학들은 일본보다 빨리 미국처럼 대학원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대학 교수직으로 취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일본에서도 1990년대 중반부터 인문계 대학원생들이 과거보다 두세 배 늘고 있다. 특히 도쿄대 교토대 등 유명대학과 자연계 학생들은 오래 전부터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에서는 인문계 대학원생들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취직은 앞으로 한국에서와 같이 정말 어려운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에서는 대학의 서울 집중이 더 한층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도 대학의 도쿄 집중이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지방에도 좋은 대학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노요리 료우지(野依良治)는 교토대를 졸업해 현재 나고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일본의 도쿄 집중보다 더 심각한 서울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에 있는 대학들을 더 잘 육성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학 서울집중 이해안가▼

내가 올해 서울대에 일년 예정으로 온 이후 신문이나 TV에서 한국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시설이나 학교운영 등의 면에서 불만을 느껴 주로 미국의 명문대로 입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봤다. 일본에서는 현재 그런 학생들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일본의 대학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한국과 같은 것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일 대학인들은 더욱 협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약력:1958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와 교토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히도쓰바시대에서 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고시마대를 거쳐 94년부터 조우치대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올 3월부터 1년 예정으로 서울대에 초빙교수로 와 있다. 대한제국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한국 미국 일본의 관계사 등 국제정치사 분야의 연구를 주로 해오고 있다. 논문으로 ‘조선독립운동과 국제관계-1918년부터 1922년까지’(1999년)가, 저서로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한국’(1992년) 등이 있다.

나가타 이키후미(서울대 국제지역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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