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의 ‘화이트데이’ 외에도,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2월 14일의 ‘밸런타인데이’, 사탕도 초콜릿도 주고받지 못한 외로운 솔로들이 자장면을 먹는 4월 14일의 ‘블랙데이’ 등 매월 14일에 재미난 이름들을 붙여놓고 이를 기념하는 한국의 ‘데이(Day) 문화’는 낯선 이방인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기업들 얄팍한 상술 씁쓸▼
지난 몇 년간 그런 날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국에서 살면서 나 역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그동안 수많은 초콜릿을 선물로 받곤 했다. 선물 받으면서 기분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기대와 설렘, 재미,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한국의 데이 문화에 나 역시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한국의 데이 문화에 타성이 붙기 전 한국을 바라보는 객관적이고 애정어린 시선을 갖고 지적하고 싶은 점들이 있다.
우선 지나친 상업화 문제다. 한국의 데이 문화는 외국의 ‘밸런타인데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원래 밸런타인데이는 3세기경 로마제국에서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황제의 허락없이 결혼시켜준 죄로 순교한 밸런타인의 순교일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애초의 숭고한 의미가 일본에서 들어온 마케팅 상술에 의해 변질돼 지나치게 상업화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청소년들의 코 묻은 돈을 빼내고자 바가지를 듬뿍 씌워 초콜릿과 사탕을 팔아대는 기업들의 얄팍한 상술은 한국의 경제적 성장 뒤에 남겨진 자본주의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한국의 데이 문화를 보면서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국적 불명의 수많은 데이들이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을 고유의 전통문화에서 더욱 멀어지게 하고 물질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각 데이에 선물하는 물건 자체가 대부분 초콜릿 사탕 등 서양에서 온 먹을거리들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선물을 어느 한 품목으로 한정하진 않는다. 각자 나름대로 자그마한 시집이나 속옷, 직접 만든 케이크 등을 준비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한다. 한국 젊은이들도 초콜릿에 국한하지 말고 다양한 품목들, 예를 들어 전통과자 등을 지인들에게 선물한다면 전통문화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지고 보급도 활성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 한국 내에서 왜곡된 밸런타인데이 문화를 바로잡기 위한 젊은이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다. 밸런타인데이의 상업주의에 편승한 초콜릿 대신 이웃을 돌보는 희생을 상징하는 초를 나눠주는 캠페인이 그 한 예다. 또 청소년들을 일년 내내 이성간의 사랑에 몰두하게 하는 밸런타인데이 블랙데이 옐로데이 블루데이 등 대신 매월 14일을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이들을 위해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날로 지키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적 불명의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대신 칠월칠석(음력 7월7일)을 한국 고유의 연인의 날로 만들거나 화이트데이로 알려진 3월14일을 파이(π·원주율)데이로 만들어 수학과 관련된 행사를 치르자는 이색적인 주장들도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초콜릿이나 사탕 대신 한과 등 한국의 전통 먹을거리로 선물을 전달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고 하니 한국의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이방인으로서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웃에 사랑 전하는 날로▼
이제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은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깊게 자리잡고 있어 무시할 수 없는 행사가 됐다. 이러한 데이 문화가 가치 있는 문화로 홀로 서기 위해서는 감각적이고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그동안 관심을 쏟지 못했던 가족과 친구들,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하는 시간이 되는 진정한 사랑의 문화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존 크리스토퍼 토머스는 누구?>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등 문화 다방면에 소양을 갖고 있는 그는 94년 한국에 들어 온 이후에도 줄곧 한국의 전통 문화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현재 한양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한편 ‘조이박스(joybox)’라는 밴드에서 음악활동도 하고 있다. 제2의 고향인 한국에서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살려나가고 있다.
존 크리스토퍼 토머스 한양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