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살아보니]러시아人이 호주人 됐을 때

  • 입력 2003년 11월 14일 18시 24분


12년 전부터 한국을 20여 차례 오갔지만 그때마다 나는 늘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으로 의심받거나 불법노동자 내지 잠재적 난민 취급을 받곤 했다. 망치와 낫이 그려진 내 붉은색 소비에트 여권 ‘덕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1996년 호주로 이민해 호주 시민이 됐다. 호주는 미국의 전략적 동맹국이며 한국을 네 번째 큰 교역국으로 삼고 있는 나라다.

이런 극적 변화가 한국 출입국관리소 당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나는 올해 호주 여권을 지니고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웰컴 투 코리아”라는 말을 들었다. 과거 내게 익숙한 말은 “한국에 왜 왔냐” “언제 귀국할 예정이냐”는 등 날카로운 질문들뿐이었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입국심사대를 막 통과하려는 순간 아니나 다를까, “잠깐, 페트로프씨! 당신 여권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라는 출입국관리사무직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컴퓨터 모니터에 내가 러시아 시민권자이기도 하다는 경고 메시지가 뜬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 지역에 살다가 호주로 이민 간 사람들은 호주 전체 인구의 22%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고향 친지를 방문하러 해외여행에 나설 때면 한국을 거쳐 간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인천공항을 경유하는 것이 도쿄 오사카 싱가포르 홍콩 방콕 등을 경유하는 것에 비해 경비도 싸고 스케줄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둘째, 쇼핑에 있어 한국 상품이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면서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에서 하루나 이틀 체류하는 동안 2002년 월드컵으로 유명해진 한국의 ‘스포츠 성지’들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30만명에 이르는 옛 소련 지역 출신 호주이민자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남다르다. 1917년 적계 러시아에 패한 백계 러시아인의 상당수는 중국과 만주에 정착했다. 이들은 호랑이 사냥꾼으로 유명한 얀코프스키 일가가 1930년대 함북 청진항 인근에 세운 휴양지 ‘노비나’에서 망향의 한을 달랬다.

1949년 중국 공산화와 함께 이들 중 상당수는 호주로 이주했지만 아직도 한국의 풍광이 담긴 가족 앨범을 간직하는 등 한국에 대해 특별한 향수를 갖고 있다.

냉전시대가 만들어낸 사연들이다. 러시아계 호주인으로서 내가 인천공항 입국심사대에서 겪은 일도 아마 그런 냉전시대의 잔영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나는 안다. 한국이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을.

실로 오랜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나는 1991년 어학연수 시절 사귀었던 호주인 친구 대부분이 여전히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 건배의 구호를 외쳤다.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약력 ▼

1969년 러시아 우랄산맥 인근에서 태어나 1994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에서 한국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4∼1996년 한국 올림픽대표 축구감독을 맡았던 비쇼베츠 감독의 통역관으로 근무했고 1996년 호주로 이민해 2003년 호주 국립대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러시아어와 한·영·중·일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다.

레오니드 페트로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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