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5년이나 10년 같은 「꺾어지는 해」를 중시한다. 이를 입증하기라도 하듯 韓中(한중)수교 5주년을 맞아 북경(北京)에서는 이를 축하하는 연회 세미나 공연 등이 연일 베풀어지고 있다.
▼ 수교5주년 연일 축제 ▼
22일 주중 한국대사관 주최 기념리셉션에서 만난 중국외교부 관리는 『중국은 한국과의 수교기념일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올해는 수교 5주년으로 꺾어지는 해라서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리셉션에 중국측에서 羅幹(나간)국무원비서장이 참석한 것이 중국의 특별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비서장은 부총리급으로 올 가을 15차 당대회 때 정치국원으로 발탁될 가능성이 큰 실력자. 중국은 웬만한 국가와의 수교기념일이나 국경일 축하행사에는 주로 장차관급을 참석시키는 것이 관례라고 이 관리는 덧붙였다.
한국과 중국의 긴밀해진 관계를 엿보게 하는 사례들은 이밖에도 수 없이 많다. 최근 북경의 인민대학은 2,3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한국어강좌를 개설해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과연 몇명의 학생이 수강할까 반신반의했던 대학당국은 수백명이 몰려들자 부랴부랴 강의실을 넓은 곳으로 옮겨야 했다. 이 대학은 직장인을 상대로 한 한국어초급반 특강도 개설했다. 최근 한 상사주재원은 시내운전중 신호위반에 걸렸으나 한국인이라고 신분을 밝히자 중국공안원이 봐주더라는 경험담을 전하기도 했다.
한중관계의 발전은 남북한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양쪽을 모두 상대해보면서 어느쪽이 합리적인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중국 군부의 한 실력자는 얼마전 북한의 현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戰則戰敗 和則和敗 不戰不和 不勝不敗(전즉전패 화즉화패 부전불화 불승불패)」 즉 한국과 싸우면 싸워서 지고, 화해로 나서면 그로 인해 지고, 따라서 싸우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으면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북한의 태도가 바로 이런 딱한 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의 「혈맹의 동지」를 형편없이 폄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중관계가 표면에 드러나는 친선분위기처럼 장밋빛 일색인 것은 아니다. 지난 5년의 「관계증진」만으로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 단절의 간격이 아직 많이 남았다.
좋은 사례가 역사를 보는 시각차다. 6.25는 아직도 「미제의 도발에 맞서 조선을 도와 출병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는 게 중국의 공식입장이다. 북한의 남침사실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채 『1950년에 조선내전이 폭발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고있다.
▼ 「공동번영」 아직 먼 길 ▼
중국이 발해(渤海)를 자국의 지방사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고구려마저 「당(唐)의 지방정권」으로 보는 시각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 금년 여름 길림성 집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지를 돌아본 국내 모대학의 사학과 교수는 중국당국의 집중적인 감시 때문에 몹시 신경이 쓰였다고 토로했다.
결국 현재의 한중관계는 수교 기념리셉션에서 만난 한국측 인사의 다음과 같은 진단이 가장 정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두나라 관계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한반도의 안정유지와 경제협력이라는 현실적 조건이 맞아떨어져 가까워졌을 뿐이다. 마음속으로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공동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황의봉<북경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