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오태동/장터논리에 가슴죄는 中인민

  • 입력 1998년 11월 15일 19시 52분


얼마전 랴오닝(遼寧)성의 성도(省道) 선양(瀋陽)시에 갔다가 거리에서 목격한 일이다. 잘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앞에 밀린 차량과 차도에 늘어선 사람들때문에 멈추어섰다.

무슨 사고인가 하고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오륙십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로 한가운데에 모여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퇴직 연금을 제대로 지급하라는 시위라고 운전사는 설명했다.

얼마전부터 심심찮게 일어나는 데모다. 노동자 농민이 세운 사회주의국가에서 웬 데모냐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현실이다. 운전사는 “시위를 하려면 시정부나 성정부 마당에서 하지 왜 길바닥에서 저러는지 모르겠다. 저런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라며 차를 돌려 샛길로 빠졌다. 길을 바꿔 달리면서도 그는 마치 못볼 걸 본 것처럼 투덜댄다. “이젠 자기 살 길은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지….”세상 어디서나 발빠르고 변화에 민감한 운전기사는 이미 ‘장터의 논리’로 무장돼 있었다.

투자기업관리를 한다며 중국에 처음 왔던 1988년. 푸젠(福建)성 푸저우(福州)에서 일할 때인데 방송국 기자로 일하는 중국인 친구를 알게 되었다. 공무원인 기자의 월급이 학력이나 하는 일의 중요성에 비해 너무 적다싶어 하루의 업무량을 물어봤다. 그는 기자지만 특종같은 것엔 신경쓸 필요가 없어 한두시간 정도면 하루일을 다한다고 했다.

나는 자본주의 논리에 익숙한 기업관리자답게 “하루에 네시간 일하고 직원수를 반으로 줄이면 월급도 두배로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초보적인 산술방법을 제시했다. 친구는 빙그레 웃으며 “그러면 나머지 직원은 어디서 뭘하며 먹고 사느냐. 일의 절대량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어렵지만 함께 먹고 살아야 한다”며 오히려 내 논리의 단순함을 지적했다. 그때부터 나는 중국의 정책을 대할 때마다 ‘함께 먹고 산다’는 화두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었다. 중국은 지금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공무원 숫자도 엄청나게 줄이고 있다. 그 친구의 낭랑한 목소리가 방송을 통해 계속 흘러나오고 있을지 아니면 어느 장터길목에서 장사꾼이 되어 호객에 목청을 돋우고 있을지 궁금하다.

지금 중국에서도 구조조정의 큰 물결이 파고를 더하고 있다. 아시아 전체를 강타하고 러시아까지 몰아친 경제 한풍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데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겉으로는 대국의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감추어진 고뇌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본주의 논리와 시장경제의 장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효율성에 입각하여 조직의 군살은 과감하게 도려내야 한다. 그러나 도려내진 사회주의 인민을 어떻게 먹여살릴 것인가.

중국정부는 이미 정리해고의 중국식 표현인 ‘샤강(下崗)직원’의 관리지침을 공표하고 재취업 알선과 기본생활 보장, 그리고 사회안전성 유지 등에 열심이다. 어느나라든 실업대책이 쉬운 것이 아닌 만큼 구조조정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현상이 인민의 가슴을 조이게 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 중국도 편안한 시대는 아니다. 효율과 분배, 새로 등장한 이 모순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에 중국이 추진하고있는 개혁의 성패가 달려 있다. 지금 중국은 정치 경제 등 각 방면의 두뇌가 총동원되어 새로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짜내기에 바쁘다.

오태동<중다렌 한스컨설팅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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