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한종백/獨 실업대책「630마르크 직업」

  • 입력 1999년 4월 13일 19시 30분


독일에서는 많은 사람이 ‘6백30마르크 직업’을 갖고 있다. 학생이나 여성들처럼 사회적 기반이 비교적 약하고 돈벌기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이 직업을 선택한다.

6백30마르크 직업의 월 급여는 이름 그대로 6백30마르크(약 42만원)로 한정된다. 이들을 채용하는 기업 또는 업소 주인은 이 금액의 22%에 이르는 세금을 납부하고 피고용인은 세금을 면제 받는다. 시행 초기에는 ‘5백90마르크’였다가 점차 급여가 올라가고 있다.

최근 기업체들은 풀타임 근로자 1명을 고용하는 대신 6백30 마르크 고용인 3명을 쓰면서 세금을 적게 내고 작업성과를 높이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다. 또한 ‘6백30마르크 직업인’들 중에는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직업을 갖는 방법으로 수익을 짭짤하게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되자 정식으로 직장을 구하려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이들의 불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 제도를 만든 취지는 학생과 주부에게 취업과 돈벌이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었는데 안정적 풀타임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금년 초 이 제도의 계속 시행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결국 4월부터 제도를 보완해 계속 시행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 독일에서는 취업의 기회가 많지 않은 소수인종에까지 이 제도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구 서독시절부터 많은 숫자의 소수인종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독일에 들어와 정착했다. 통일독일 총인구 8천만명 중 7백만명이 외국인이다. 이 중 터키인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독일의 외국인 포용정책은 2차 세계대전 중 유태인 등 소수인종에 대한 만행을 반성하고 보상하는 차원의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인종청소를 반성해 독일인들 사이에 소수민족과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는 설명이다. 물론 나치에 반대해서 처형당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은 수많은 독일인까지 포함한 개념이다.

현재 독일의 실업자 수는 약 4백15만명. 10.4%의 높은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 실업수당 지급 대상이다. 실업수당은 전 근로자가 분담하는 실업보험료가 재원이다.

실업수당을 지급받으면서 ‘6백30마르크 직업’에 종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달부터 ‘6백30마르크 직업인’도 인적사항이 노동부에 등록돼 전산망을 통해 취업 여부를 금방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당종업원 간호보조사 주유소카운터 비서 공사장근로자 등 6백30마르크 직업의 종류는 앞으로 더욱 다양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풀타임 직장인들의 반발도 예상할 수 있으나 그들은 부가가치가 더 높은 직종을 택해 삶의 질을 높여갈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은 약자 보호와 사회적 평등기회 부여라는 대명제 하에 새로운 실업자 대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

한국의 실업자 중 78%가 7개 도시에 몰려있고 연령별로는 20대가 41%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취업하기가 매우 어렵고 특히 여성들의 일자리 잡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는 6백30마르크 일자리 정책을 한국적 상황에 적용해 실업 해결의 아이디어를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영세사업자에게 싼값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를 충분히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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