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로(權禧老·일본에서는 여전히 ‘김희로’로 불린다)씨가 부산에서 난동을 부리다 체포됐다는 내용이었다. 산케이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에 해설기사까지 덧붙여 크게 보도했다.
제목을 보자. ‘김희로 전 수형자 농성―여성 등 위협 방화, 체포’ ‘김희로 전 수형자 부산에서 난동―죽창으로 지인 위협, 방에 방화 혐의’ ‘김희로 용의자 죽창으로 지인집 습격―부부위협 방에 방화’등.
일본 신문들이 권씨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32년 전 그가 살인과 인질 농성극을 벌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가 없다. 권씨의 이번 범행은 그가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스마타쿄(寸又峽)온천지대의 한 여관에서 벌인 점거농성 사건을 연상케 한다. 총은 죽창으로, 여관손님은 부부로 바뀌었을 뿐 수법이 비슷하다. 만일 권씨가 절도 혹은 사기를 치다 체포됐다면 일본 신문들이 이처럼 크게 다루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본 언론매체가 이렇게 야단법석을 떤 배경에는 ‘그러면 그렇지’하는 일본인들의 심리가 있는 것 같다. ‘민족 차별 때문에 살인했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점은 이번 일을 보면 금세 알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이다.
물론 어떤 신문도 그렇게 쓰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독자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갖도록 기사를 취급한 것이다.
과거 권씨 사건은 다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과 한국은 각자 유리한 쪽으로 해석했으며 아직도 그렇다. 단순 살인범으로 보는 일본측은 한국에서 그가 영웅시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본은 그를 가석방해 한국으로 보내주었다. 31년 이상 복역한 그를 계속 붙잡아 두면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비화돼 국가 이미지가 떨어질지 모른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권씨는 ‘개선장군’처럼 한국에 왔고 여생을 편하게 지낼 기회도 생겼다. 그런 점에서 이번 권씨의 범행은 매우 유감스럽기만 하다.
이번 일로 그는 ‘정의로운 범죄자’란 이미지를 잃어버렸다.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이 원체 적은 일본 땅이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