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 업]부산영화제 방문한 빔 벤더스 감독

  • 입력 2000년 10월 8일 18시 55분


“이히 리베 디히!(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등으로 잘 알려진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55)은 제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흥분과 활기를 불어넣은 슈퍼스타였다. 그를 부산 남포동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텍사스에 파리가 있다는 의미인 그의 영화 ‘파리, 텍사스’의 이미지와 어우러졌다.

7일 밤 부산에서 열린 팬들과의 대화에서, 팬들은 벤더스감독에게 단순한 사인요청이나 기념촬영을 넘어 그의 영화에 ‘경의’를 표하고 싶어했다.

남자팬의 입에서도 사랑한다는 독일어가 터져나왔다. 그의 새 영화 ‘밀리언달러 호텔’의 표는 순식간에 동이 났고 2시간짜리 영화가 끝난 심야에도 그와의 대화를 위해 수백명이 자리를 지켰다.

영화제마다 탐을 내지만 좀처럼 초대에 응하지 않는다는 그는 영화제를 들뜨게 만드는 재주도 지니고 있었다.

신부같은 복장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벤더스감독은 카메라 앞에서는 양복깃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거나 영화제 깃발로 몸을 감싸는가 하면 드러눕기까지 해 관객과 사진기자들의 ‘입맛’을 맞춰 주었다.

그는 공식기자회견은 30여분간 했지만, 신작 ‘밀리언달러 호텔’ 상영이 끝난 뒤 팬들과의 대화에는 1시간 이상을 할애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무대에 털썩 주저앉아 서있던 팬들을 편히 앉도록 유도했다. 영화제 관계자들이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거듭 요구했지만 여전히 벨이 울려대자 “한국인만큼 전화통화를 좋아하는 민족은 처음 봤다”고 한마디했다.

벤더스감독은 부산에 오게 된 이유에 대해 “벌써 4번이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말해 5회를 맞은 이 영화제에 대한 립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1976년 독일문화원의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본 젊은 영화학도들이 24년 세월이 지나도 그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도 설명했다.

그의 신작 ‘밀리언달러 호텔’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에 있는 호텔에서 현장 촬영으로만 만든 영화. 벤더스감독은 “1914년 지어진 직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비싸고 백만장자들이 묵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정신이상자나 극빈자수용소가 되다시피 한 이 호텔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적, 역설적, 변태적 모습을 모두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지만 세상의 변화나 최소한 변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TV 등 다른 문화산업은 이 세상이 살맛나고 아름답다고 거짓말만 늘어놓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장르다”고 영화관을 피력했다.

<부산〓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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