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이 무엇인지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20세기 여성운동의 대모(大母)’ 글로리아 스타이넘(68)이 내놓은 명쾌한 답변이다.
27일 제주 서귀포시 칼호텔에서 강연회를 가진 스타이넘씨는 이날 30여년간의 여성운동을 통해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전하며 “여성운동은 결국 남성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남성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지만 이제 그 권력이 남성을 죽이고 있습니다. 남성다움을 강요하는 사회가 폭력과 스트레스, 과속, 음주 등으로 남성들의 수명을 여성보다 6, 7세나 짧게 만들고 있죠. 육아의 보람이나 아이와의 친밀감 등을 얻을 권리도 박탈하고 있어요.”
이런 의미에서 가정의 남녀 평등은 남성에게도 큰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여성을 반쪽짜리로 만든다’는 이유로 결혼을 거부해오다 66세의 나이로 5세 연하의 남성과 결혼, 여성운동가들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내가 바뀐 것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이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나이가 돼서야 진정 평등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평등하던 가정도 아이가 생기면 불평등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이 대신 나 자신에게 삶을 주기로 결정한 거죠.”
여성운동 과정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느냐는 질문에는 “가치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사람들과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됐다”며 여성들간의 네트워크를 강조했다.
스타이넘씨는 “여성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함께 모여 살)나라조차 없는 유일한 종족인 만큼 서로간의 끊임없는 대화와 나눔을 통해 하나의 감정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며 “삼삼오오 함께하는 독서클럽이나 점심식사 등 작은 모임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100년 동안 여성의 법적 정체성을 얻었지만 진정한 사회적 평등권을 찾기 위한 두 번째 물결은 또 하나의 세기가 걸릴 것”이라며 “우리는 아직 30년밖에 싸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72년 세계 최초로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Ms)’를 창간한 스타이넘씨는 임신중절 합법화와 여성의 의회진출, 후진국 여성들의 인권 등을 위한 각종 운동을 펼쳐 여성의 역사를 바꿔놨다는 평가를 듣는다.
언론인으로 활동할 당시 위장취업해 쓴 ‘나는 플레이보이 클럽의 바니걸이었다’는 폭로기사로 명성을 날리기도 한 스타이넘씨는 99년 ABC방송이 뽑은 ‘20세기를 빛낸 여성 10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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