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평생을 바쳐온 공로로 ‘유관순상’ 제2회 수상자로 선정된 윤정옥(尹貞玉·78)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지도위원의 첫 반응은 “상을 못받겠다”는 것이었다.
군 위안부 문제가 이 정도나마 세상에 알려진 것은 무엇보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기와 노력 덕분이라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 유관순 열사를 기리는 상을 자신이 받기에는 ‘한 일이 없다’는 점도 상을 고사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고집’은 결국 “대문 밖에도 제대로 나서지 못하고 숨어 살던 할머니들이 당당히 나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게 된 것도 성과 아니냐”는 주변의 설득에 꺾였다.
윤씨는 역사의 뒤안에 묻혀 있던 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의 진실을 세상에 고발한 선구자다.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0년 일본 오키나와에 숨어 살던 배봉기 할머니를 찾아내 인터뷰한 것을 시작으로 국내와 일본 태국 등지에서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내 그들의 증언을 세상에 알렸다. 90년에는 정대협을 조직해 10년간 공동대표직을 맡아 이끌었고 중국 지린(吉林)성에서 이름없이 묻혀 있던 군 위안부 여성들의 무덤을 찾아다니며 위령제를 지내기도 했다. 93년에는 평양을 방문,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남북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아울러 일본의 만행을 유엔 인권위에 제소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국제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국내 할머니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자기 이름도 고향도 한국어도 잊어버린 상태로 ‘아리랑’ ‘도라지’ 곡조만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더군요. 우리를 만나기 전에는 매일 들판에 나가 혼자 목 놓아 우는 게 일과였던 할머니도 있었지요.”
윤씨가 군 위안부 문제에 천착하게 된 데는 이화여전 1학년 때이던 1943년 군 위안부로 끌려갈 위험을 피해 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인 강원도로 내려갔던 개인적 체험이 크게 작용했다.
“그 때 끌려갔던 여인들이 나를 대신해 끌려갔다는 죄책감과 나도 언제 끌려갈지 모른다고 느꼈던 공포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요즘 윤씨는 정대협 활동 일선에서 거의 물러난 상태. 대신 그간 바빠 손을 대지 못했던 자료 정리와 기록 등에 여생을 바칠 계획이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윤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젊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과 참여를 보여줄 때 보람과 희망을 느낀다.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어 자꾸 돌아가시는데 일본의 사과와 배상은 아직도 요원하고 정부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과 한국의 과거사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어요.”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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