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숙명여대 '캠퍼스 코디네이터' 정호영 할머니

  • 입력 2003년 4월 27일 19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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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을 위해 10년째 숙명여대 캠퍼스 조경 작업을 하고 있는 정호영 할머니. -김미옥기자
후배들을 위해 10년째 숙명여대 캠퍼스 조경 작업을 하고 있는 정호영 할머니. -김미옥기자
“캠퍼스에 메이크업을 해주는 기분입니다. 학교가 꽃으로 곱게 단장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자타가 공인하는 ‘숙명여대 캠퍼스 코디네이터’ 정호영(丁浩英) 할머니. 올해로 일흔살을 맞는 그는 벌써 10년째 숙명여대의 조경을 담당해 오고 있다. 수만 송이의 꽃으로 물든 봄 캠퍼스는 정 할머니의 가장 큰 자랑이다.

이 학교 동문(1959년 정치외교학과 졸업)인 그는 나무 심기 경력 32년의 베테랑 조경사. 취미로 꽃과 나무를 가꿔 오다 서울 근교에 농장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숙명여대의 조경에 참여하게 된 것은 93년 이경숙 현 총장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았는데 너무 황량했어요. 마침 총장님과 뜻이 통해 전국에서 제일 예쁜 캠퍼스를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죠.”

정 할머니는 그때부터 농장에 있는 가장 좋은 나무들을 골라 학교 구석구석에 심기 시작했다. ‘한 그루 값에 열 그루를 심는 셈’ 치고 모교를 단장하기 시작한 것. 그 결과 침엽수와 잔디뿐이던 캠퍼스가 10년이 지난 지금 모과, 산딸기, 보리수 등 수십 종의 유실수를 포함해 수백 종의 나무와 꽃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캠퍼스로 변했다.

“봄에 제일 일찍 피는 꽃부터 시작해서 가을 단풍까지 모든 정경들을 볼 수 있게 꾸미고 싶었어요. 도시에서 자란 후배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유실수를 보여주고 싶었고요.”

정 할머니는 일흔 살의 나이에도 불구, 매일 오전 6시에 인부들과 함께 나와 오후 6시까지 하루 종일 직접 나무들을 보살핀다. 주위 사람들은 “정 할머니의 손이 닿지 않은 나무가 없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작업복에 군용 워커를 신고 활기차게 교정을 가로지르는 그의 모습은 이미 후배들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정 할머니는 “아침에 일하노라면 스무살짜리 앳된 후배가 ‘왕언니’라고 부르며 인사하기도 한다”며 흐뭇해했다.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김지현씨(22)는 “철쭉으로 뒤덮인 캠퍼스가 너무 예뻐서 친구들을 초대하곤 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정 할머니는 현재 미대와 음대를 중심으로 새로운 꽃밭을 가꾸는 중. 학생들이 꽃을 보며 밝고 명랑한 심성을 키웠으면 좋겠다는 그는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숙명여대를 찾아와 마음을 풀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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