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2000년 일본의 가키누마 센신(枾沼洗心·74) 스님과 함께 북관대첩비 환국운동을 시작해 올해 이를 거의 성사 단계로 이끈 숨은 공로자다. 그는 지난해 7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센신 스님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북관대첩비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켰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내 임기 중엔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며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당시 외교통상부 담당 과장은 “어차피 북한 유물이고 통일되면 돌려받게 될 사안을 왜 서두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님은 올해 1월 21일 동아일보의 후원 아래 24개 단체를 모아 ‘북관대첩비 민족운동중앙회’를 설립하고, 3월 1일 야스쿠니를 방문해 난부 도시아키(南部利昭) 궁사(宮司)에게서 “남북간 합의만 이뤄지면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스님은 이를 바탕으로 3월 28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북한 불교계 대표인 심상진 조선불교연맹 부위원장을 만나 3개항의 남북합의를 끌어냈다. 북한의 평양중앙방송에서도 4월 12일 이 합의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실상 반환을 위한 모든 여건을 마련한 셈.
“그때까지 이리저리 재고만 있던 정부가 갑자기 ‘민족운동중앙회에 보수적인 단체가 너무 많다’며 해체를 종용하고 나섰습니다. 내가 ‘그럴 수 없다’고 강경하게 버텼고, 결국 올 8·15 광복절에 맞춰 중앙회가 환국행사를 주도하고 정부는 측면지원만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4월 23일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북한의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나 “북관대첩비를 반환받으려면 남북 당국자 회담이 필요하다”는 말을 건넸다가 김 위원장이 화답하자 정부의 태도가 또다시 돌변했다.
“그 이후 정부에서 소식이 뚝 끊겼습니다. 민간에서 상을 차리니까 잿밥에 눈이 먼 정부가 이를 가로채려고 나선 거지요. 하지만 북관대첩비 반환문제는 민간 차원에서 해결될 수밖에 없는 성격의 일입니다. 일본의 수많은 약탈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성실한 중계자’ 역할에 머물고 야스쿠니와 민족운동중앙회 간의 교류차원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한국정부가 앞에 나서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함경도(북관) 출신의 실향민인 초산 스님은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상태에서 생애 마지막 화두로 붙잡고 4년여간 용맹정진해 온 북관대첩비 환국이 정부의 이중적인 행태로 자칫 무산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북관대첩비 환국은 우리의 호국영령을 모셔오는 경건한 일입니다. 제발 정부에서 이를 무슨 정치적 이벤트거리나 전시상품처럼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약속해 준다면 북관대첩비를 돌려받은 즉시 정부에 위임하고 깨끗이 물러나겠습니다.”
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북도 길주에서 조선 의병이 왜군을 격파한 것을 기념해 숙종 33년(1707년)에 세워진 승전비.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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