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쳐다보던 북한 영사부 직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직원은 상기된 얼굴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나쁜 ××. 민족반역자가 여길 왜 왔어. 도망칠 때는 언제고….”
순간 영사부의 넓은 홀이 썰렁해졌다. 5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북한대사관 풍경이다.
대사관을 찾은 사람은 탈북한 뒤 남한에 정착한 지 11년째인 새터민(탈북자) 김형덕(31·사진) 씨. 김 씨는 21일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털어놨다.
“계속 담당자를 불러달라고 하니 국가보위부 파견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더군요. 옆방에 들어가 한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공화국에서는 광폭(포용)정치를 펼친다고 대외에 선전합니다. 나는 공화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일도 없고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고향을 방문하면 공화국의 넓은 아량도 보여줄 수 있지 않습니까.”
김 씨가 당당하게 논리를 펴자 처음에 “나쁜 ××”라고 욕설을 퍼붓던 직원도 주소와 전화번호를 물은 뒤 “상부에 보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왜 그랬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김 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해 보지도 않고 북한이 나쁘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봅니다.”
김 씨는 지난달 새터민으로는 처음으로 대학 재학 시절 만난 남한 출신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
새터민들의 금강산 관광은 정부에서 엄격히 막고 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김 씨의 관광신청서는 문제없이 통과됐다. 먼저 문을 두드린 것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평안남도 개천 출신인 김 씨는 고등중학교(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사 전담 청년조직인 속도전청년돌격대에서 일하던 중 19세 때인 1993년 북한을 탈출해 이듬해 남한에 정착했다.
이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6대 국회에서 당시 민주당 김성호(金成鎬) 의원의 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김 씨는 “가족을 찾기 위해 20여 차례 중국을 오가며 많은 돈을 썼지만 벽지로 추방됐다는 소식만 듣고 끝내 찾지 못했다”며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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