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 출마할 공화 민주당의 후보선출을 위한 첫 공식투표인 아이오와 코커스는 9개월동안 계속되는 대선 장정의 풍향계 역할을 해왔지만 적지 않은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1976년 코커스가 대표적인 경우. 지미 카터 민주당 예비후보는 코커스 당시 전국적인 지명도가 전혀 없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이오와 코커스에 이어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1위를 차지한 뒤 결국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아이오와에서 1위를 차지한 예비후보가 당의 대선 후보로 뽑히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80년 코커스에서 1등을 했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의 카터는 당내 레이스에서 탈락했다. 88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했던 공화당의 밥 돌 역시 대선후보가 되지 못했으며 92년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은 아이오와에서 겨우 3위를 했다. 이는 아이오와 주민의 정치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 아이오와 주민의 절반이 보수주의 성격의 단체인 기독교연맹의 회원일 정도로 매우 보수적이다. 그래서 보수적 성향의 예비후보들이 아이오와에서 높은 지지를 얻는 결과가 나타난다.
코커스는 당원들만 투표에 참여하기 때문에 유권자의 일반적 지지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맹점이 있다. 아이오와주의 대의원(공화-전체 1990명중 25명, 민주-4289명중 47명)이 적어 전체 경선판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도 종종 코커스 결과가 최종결과와 다른 요인. 이 때문에 올해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처럼 아이오와 코커스를 포기하고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 치중하는 예비후보도 나타난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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