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빙의 승부' 왜 계속될까?▼
‘40년 만의 불꽃튀는 접전.’ 8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 선거의 향배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는 3차례의 TV토론을 끝낸 뒤에도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1960년 존 F 케네디 민주당후보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의 대결보다 더욱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평가다. 미국 정치학회 등은 여전히 고어 후보의 승리를 점치지만 지지율 조사 등은 부시 후보의 우위로 나타나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이런 박빙의 승부가 계속되는 이유는 과연 무얼까.
우선 대선을 둘러싼 여건이 크게 바뀐 점을 꼽을 수 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선임연구원 토머스 만은 “냉전의 종식, 경제 번영, 대통령의 스캔들, 정치 냉소주의 등이 국민의 선택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클린턴 시대’의 명암이 유권자의 최종 결정을 머뭇거리게 하고 있다는 것.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는 “10년 연속 호황이라는 미국 경제가 유권자와 선거를 갈라놓았다”고 풀이했다. 경제가 좋아지면서 누가 집권해도 상관없다는 정치적 무관심이 국민 사이에 팽배해진 것. 그 결과 선거가 열성 당원들간의 승부로 변질돼 유권자가 외면하는 ‘당신들의 잔치’가 돼버렸다. 여기에는 95, 96년 백악관과 의회가 싸우면서 연방 정부가 두 차례나 폐쇄되는 등 잇따른 당파싸움으로 인한 정치적 냉소주의도 한몫을 했다.
또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두드러진 이슈가 없고 두 후보의 정책 노선에도 별 차이가 없다는 점도 한 요인이다. 세금감면안과 사회보장정책 등을 빼면 정치 외교 경제 분야에서 양당이 거의 비슷한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두 후보의 캐릭터가 너무나 틀린 점도 하나의 이유. ‘선거의 귀재’로 불리는 딕 모리스 미국 보트닷컴(vote.com) 사장은 “고어는 ‘준비된 대통령’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은 떨어진다. 유권자의 75%는 고어보다 친근한 이미지의 부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10년 가까이 태평성대를 지켜온 민주당에 대한 선호와 ‘바꿔보자’는 변화의 욕구 사이에서 유권자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런 요인들의 상승작용으로 인해 ‘게임(전국 득표수)’에서는 지고 ‘승부(선거인단 확보)’에서 이기는 ‘소수파 대통령’의 출현을 점치는 관측도 나온다.
5%가 안되는 경합지역의 부동층 유권자가 역사상 가장 큰 권력을 창출하는 선거드라마를 펼쳐낼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고어의 하루▼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겐 하루가 짧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후보에게 뒤지고 있는 것을 역전시키려면 촌음(寸陰)이 아깝기만 하다.
28일 오전 첫 유세가 열린 곳은 펜실베이니아 주의 윌크스 대학. 청중이 수백명밖에 안됐지만 고어 후보에게는 모두 놓칠 수 없는 한 표다.
그가 이날 핵심 이슈로 삼은 분야는 의료 공약. 그는 “거대한 제약회사들이 부시 후보를 지지하고 나를 반대하는 것은 헛간 안에 쥐가 어디 있는지를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제약회사가 아닌, 시민들이 혜택을 입는 의료정책을 펴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어구 하나까지 완벽히 외울 정도로 정리된 생각을 토로한 고어는 이어 수도 워싱턴으로 향했다. 오늘은 아들 앨버트 3세가 다니는 고교에서 풋볼 게임이 있다. 자신이 좋은 아버지임을 보여주는 것도 득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는지 금쪽 같은 시간을 쪼개 잠시 얼굴을 비쳤다.
고어가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로 이동했을 땐 이미 날이 저물었다. 수은주는 영상을 가리켰지만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였다.
그러나 5000명 이상의 지지자들이 모인 것을 보자 힘이 솟는지 고어는 양복 상의를 벗어 던지고 와이셔츠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 열변을 토했다.
“대선 결과는 여러분이 미국의 장래에 얼마만한 열정을 갖고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슴을 필요로 합니다.”
계속된 강행군으로 목에선 쇳소리가 났지만 그래도 야간유세를 마치는 게 아쉽기만 했다. 29일 미국에서 ‘서머 타임’이 해제된다. 그는 선거일까지 유세할 시간이 1시간 늘어난 것에 안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부시의 하루▼
28일 오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참모들로부터 이날 조간신문 등에 실린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받았다. 여전히 그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여론조사 결과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 그는 참모들을 격려한 뒤 위스콘신주 애플턴의 마이너리그 야구경기장을 찾았다. 날씨가 쌀쌀했으나 경기장은 지지자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단상에 오른 부시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손가락 3개로 ‘W’자를 만들어 보였다. 승리의 ‘V’자를 2개 겹쳐 확실한 당선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한편 그의 중간 이름과 위스콘신주의 머리 글자를 동시에 뜻하는 기발한 제스처.
부시 후보는 “고어 후보가 인터넷을 발명했다고 주장하는데 인터넷 주소가 모두 WWW로, 1개도 아닌 3개의 W로 시작하는 이유가 뭐냐”고 목청을 높였다. 청중은 응원용 꽃술을 흔들거나 손가락으로 W자를 만들어 보이며 열광했다.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주 등 격전지를 순회하는 강행군으로 인해 피곤할 만도 한데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호응 탓인지 표정이 밝기만 하다. 이어 그는 미주리주의 컬럼비아시를 찾았다. 이동하는 동안 비행기에 동승한 취재진과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선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요즘 지지도가 계속 상승하기 때문인지 전에는 냉랭하던 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질문공세를 펴오는 게 즐거운 표정이다.
부시 후보가 유세와 선거전략 검토까지 모두 마친 시간은 29일 오전 1시. 그는 일요일인 이날은 일절 유세를 갖지 않고 쉬기로 했다. 선거가 눈앞에 닥쳤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 때문이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美대선 Q&A▼
미국인들도 잘 모를 만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미국 대통령선거. 문답을 통해 그 절차와 특징을 알아본다.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미국 대선은 예선과 본선으로 나뉜다. 1월말부터 6월까지 공화 민주 양당은 50개주에서 코커스(당원대회)와 예비선거(프라이머리)를 거쳐 전당대회에서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와 앨 고어 부통령을 후보로 공식 추천했다.”
―직접선거인가 간접선거인가.
“직접과 간접이 혼용된 형태다. 유권자들은 후보에게 투표하지만 선출되는 것은 각 주에 배당된 선거인단(538명)이다. 이들이 12월18일 대통령 선출 투표를 한다. 그러나 이는 11월 7일 선거결과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선거인단은 어떻게 결정되나.
“각 주의 연방 상원의원(2명 동일)과 하원의원 수를 합쳐 결정된다. 수도인 워싱턴DC는 컬럼비아 특별구라는 이름으로 3명의 선거인단이 있다. 각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전부 가져간다. 이른바 ‘승자독식(Winner Take All)’ 제도로 선거인단수를 많이 얻은 후보가 당선된다.”
―선거전략의 특징은….
“후보들은 선거인단이 많은 캘리포니아(54명) 뉴욕(33명) 텍사스(32명) 플로리다(25석) 등에 비중을 둔다. 선거인단이 적은 주 여러 곳보다 선거인단이 많은 주에서 이기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표를 많이 얻고도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한 경우도 있다. 1876년(러더퍼드 헤이스)과 1888년(벤저민 해리슨)이 바로 그랬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은….
“세금 감면 문제다. 부시는 흑자의 대부분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것인 반면 고어는 세금 감면액을 줄여 사회복지와 교육 등의 재정확충에 사용하자는 쪽이다.”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는….
“현재 유권자의 90%는 지지후보를 결정한 상태다. 문제는 나머지 부동층과 젊은 층의 향배. 부동층 가운데는 고어 지지자가 더 많지만 젊은 층의 투표율이 사상 최저치로 떨어질 전망이다.”
―최대의 경합 지역은 어디인가.
“플로리다 미시간 테네시 펜실베이니아주를 중심으로 한 중서부의 15개주다. 고어 후보의 고향인 테네시주와 부시 후보의 친동생인 젭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주마저 경합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이번 선거는 혼전 양상이다.”
―총선도 동시에 치러지는가.
“상원 100석 중 33석, 하원 435석 전체의 선거가 함께 치러진다. 공화당이 상원(55석) 하원(223석) 모두 다수당이다. 공화당이 8년 만에 백악관을 탈환하고 의회의 우위도 지킬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미 국민은 백악관과 의회를 다른 당에 맡겨 권력을 견제해 왔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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