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말 멕시코의 경제 위기는 부분적으로 1988년 대선의 후유증에서 비롯됐다. 집권 제도혁명당의 거물 쿠아우테목 카르데나스는 탈당해 독자 후보로 나왔다. 그는 잘 싸웠다. 그러나 개표 발표가 지연되고 집계 컴퓨터가 다운되는 일이 생겼다. 결국 제도혁명당의 카를로스 살리나스가 이겼다.
94년 대선에서도 제도혁명당의 에르네스토 제딜로가 승리했으나 88년 공정치 못한 선거의 후유증으로 제딜로가 신뢰를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운 좋게 멕시코는 이를 극복했다. 제딜로가 올 대선에서 제도혁명당의 패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비센테 폭스의 새 정부가 민주적 정통성을 갖고 출범하게 됐다. 이는 귀중한 경제 자산이다.
현재 미국은 문제가 있다. 이번 사태를 균형있게 다룰 수 없기 때문에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 앨 고어 후보 진영은 선거 이후 거친 표현을 했지만 고어 후보측의 승리만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조지 W 부시 후보진영은 ‘절도 행위’ ‘쿠데타’라는 표현을 주저없이 썼다.
이것은 위험한 게임이다. 재판부가 예정된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고어 후보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면 어떻게 되는가. 역으로 부시 후보가 플로리다주 관리들의 편파적인 절차로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나라를 통치하겠는가.
기업들은 부시 후보를 지지해 왔다. 그러나 기업들은 경제를 위해서나 자신들을 위해서나 차기 대통령은 그들의 처음 선택(부시)보다는 정통성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멕시코의 정치적 성숙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멕시코는 민주주의가 때로는 패배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아 버린 나라다.
〈정리〓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후쿠야마-문화적 측면▼
국제정치 전문가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조지 메이슨대 교수는 15일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이번 선거를 통해 외교 국방 복지와 같은 전통적인 문제가 더 이상 선거의 주요 이슈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으며 정치인들은 이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먼저 후쿠야마 교수는 “지난주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정확히 둘로 나누어졌다”며 “무엇이 미국인들을 이처럼 분열하게 만들었을까”라는 물음으로 미국의 국론분열상에 시선을 돌렸다. 그는 분열의 원인이 외교정책 경제 범죄 복지와 같은 전통적인 이슈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외교와 강력한 국방정책, 감세 등은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당선케 한 공화당의 전통적인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 이슈들은 일차적으로 남성의 관심사이며 여성들의 주의를 끌기는 어렵다. 정보화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성에 필적할 만큼 지위를 향상시켜 왔다.”
후쿠야마 교수는 정치인들이 전통적인 이슈를 다루는 데는 익숙하지만 유권자들의 문화적인 태도 변화를 간파하는데는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인의 태도 변화는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요즘 미국인의 감정은 섹스와 가정 문제에 관한 한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주의에 적대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인들은 도덕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미국인들은 동성애나 동성끼리의 결혼 등에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동성애 차별에는 반대한다.”
후쿠야마 교수는 “이는 세금이나 국방 문제에는 익숙하지만 편모 가정이나 동성 결혼문제 등을 다루는데는 서툰 정치인들에게 좋은 징조가 아니다”며 “문화적인 이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요인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빨리 적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리〓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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