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앞으로 10년 동안의 세계화는 지난 10년과는 다른 양상을 띨 것이고 미국의 대외정책도 세계화의 경제적 측면보다는 정치적 측면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세계화의 첫 번째 단계가 진행됐던 1990년대에는 경제가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 수십 년 동안 경제에 직접 개입해왔던 전세계 국가들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고 산업에 대한 규제를 철폐했으며 경제를 자유화했다.
그러나 세계화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세계 각국은 자본주의의 원칙이 많은 사람의 생각만큼 엄격한 것도, 예측성이 강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유럽 국가들은 자유화의 물결에 맞춰 경제를 개혁했지만 복지국가의 개념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또 스웨덴, 영국, 덴마크 등 일부 유럽 국가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도전해 유럽의 단일 통화를 거부했지만 시장은 그들에게 벌을 내리는 대신 오히려 보상을 안겨주었다.
세계화의 정치적 측면을 무시한 국가들은 이미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90년대 말 동아시아의 경제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과 워싱턴은 인도네시아에서 수하르토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협조했다. 그렇게 하면 정치적 경제적으로 급격한 개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도네시아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지난 2년 동안 인도네시아의 경제규모는 거의 50%나 축소되어 20년간에 걸친 경제성장의 성과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며 수천만명의 사람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나라 전체가 인종분쟁에 휩쓸리게 되었다.
인도네시아와는 대조적으로 IMF의 요구에 저항하면서 나름대로의 속도를 유지했던 말레이시아는 매우 빠르게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무역문제에서도 정치적 측면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제 3세계 국가들은 서방국가들이 양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동안 수 차례 열렸던 세계무역의 확대를 위한 국제회의가 자신들에게만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일방통행식 회의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방국가들은 자신들의 조치가 세계시장을 아무리 왜곡시킨다 하더라도 자국의 농업 등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책을 포기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 정책이 자국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화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하나의 강력한 힘이 됐다. 동시에 경제적 측면이 강조된 지난 10년간의 세계화는 미국의 새 행정부에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기도 한다. 이는 경제 자유화를 주장하면서 각각의 국가들이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조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http://www.nytimes.com/2000/12/31/opinion/31ZAKA.html)
파리드 자카리아 <뉴스위크 해외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