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비 거리 북쪽 끝에 있는 팔레비 왕궁. 1979년 이슬람혁명 때 이란에서 쫓겨난 레자 팔레비 왕이 살았던 이 곳은 2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왕궁 1, 2층은 초대형 샹들리에와 금도금 집기들로 장식된 화려한 침실과 식당들로 이뤄져 있다. 지하층은 팔레비 왕이 외국 여행 때 수집한 예술품을 모아놓아 마치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물론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화려한 팔레비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팔레비 왕궁은 이란 서민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다. 지난해 12월8일 기자가 팔레비왕궁을 찾았을 때 마침 이슬람 주일이어선지 200∼300명의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지방에서 원정온 단체 관람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서민들이 팔레비왕궁을 많이 찾는 것은 70년대 이란의 잘 살던 시절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종교 세력들은 팔레비 왕의 부패상을 알리기 위해 왕궁을 일반에 공개했다. 하지만 서민들은 왕궁을 둘러보며 오히려 이란의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왕궁에서 만난 여성 관람객 마리안 바흐테르(62)는 “팔레비 왕 시절 이란은 중동의 중심지였다”면서 “왕을 존경하지는 않지만 풍족한 경제와 다양한 외국문화를 경험하게 해준 그의 업적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왕궁 관람을 끝내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기자가 탄 택시는 택시 표시등을 달지 않아 외관은 마치 일반 자가용같이 생긴 승용차였다.
이란에서는 정식 택시가 아니더라도 운전 면허만 있으면 누구라도 자신의 차로 택시 영업을 할 수 있다. 이란 서민들이 많이 소유한 승용차는 국영자동차회사 호드로가 생산하는 ‘페이칸’. 기자가 탄 택시 운전사는 “따로 택시 표시등을 달지 않았더라도 페이칸 10대 중 7, 8대는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택시 영업이 자유로운 것은 이란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반영하고 있다. 실업률이 20∼30%에 달하는 상황에서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이란 서민들은 자신의 차를 끌고 나와 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
실업은 교육 수준이 낮은 서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란 최고 명문대인 테헤란대학에서 만난 이 대학 졸업생 아즈데 아리미(26·여)는 “1년 전 졸업했는데 아직 직장이 없다”면서 “이력서에 첨부할 서류를 발급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이란 경제가 어려워진 결정적인 계기는 1980년부터 8년 동안 계속된 이라크와의 전쟁. 90년대 들어 계속된 저유가와 1995년 발효된 미국의 경제제재도 이란의 경기회복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1997년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 등장 후 이란 경제는 서서히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란 최남단에 위치한 키슘 자유지역(Qeshm Free Area)은 하타미 대통령이 추진하는 경제개혁의 현장이다.
이란에서 가장 큰 섬인 키슘은 키시 섬, 샤바하르 항구와 더불어 3대 자유무역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키슘 자유지역은 5년 전 문을 열었으나 외국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 하타미 대통령이 15년 세금면제, 100% 외국지분 허용, 외국환 결제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자유무역지대 투자진흥책을 발표하면서 키슘에 외국기업이 몰리기 시작했다. 현재 키슘에는 40여개의 외국 회사를 포함한 80여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향후 5년간 300여개의 공장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키슘에 도착한 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쾌적한 공항과 깨끗한 해변, 그리고 테헤란보다 섭씨 30도 이상 높은 기후였다. 새로 건설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공업단지로 가는 동안 키슘과 이란 본토를 잇는 1.8㎞의 초대형 철교를 세우는 기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키슘에는 중공업 경공업 석유화학 하이테크 등 4개의 공업단지가 형성돼 있다. ‘에스칸’이라는 이름의 카세트테이프 제조공장을 둘러보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제품에 붙인‘메이드 인 Q.F.A.(Made in Q.F.A.)’라는 라벨이었다. 이 공장의 책임자인 바흐만 모하마디(43)는 “‘메이드 인 이란’ 대신 ‘메이드 인 Q.F.A.’라는 라벨을 붙일 정도로 키슘에서 만든 제품은 질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키슘에서 만난 이란 기업인들은 “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두바이를 제치고키슘이 5년 안에 중동의 산업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4개의 공업단지에 둘러싸인 키슘 중심부에는 수도 테헤란보다 훨씬 화려한 서구식 상점과 쇼핑몰이 자리잡고 있다. 일인당 80달러까지 면세 구매가 가능한 이 곳에는 소니, 필립스 등 일본과 유럽의 전자제품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다. 전자 상점에서 만난 한 스웨덴 사업가는 “폐쇄적인 이란도 개방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면서 “하타미 개혁의 현장은 시위에 휩싸인 테헤란이 아니라 분주하게 수출품을 선적하는 바로 이 곳”이라고 말했다.
▼이란 사람들은…돌아가며 가족-친지 초청 '얘기꽃'▼
이란 가정의 거실에는 소파가 많다. 5∼6개가 촘촘히 놓여 마치 가구 전시장 같다. 술집이 없고 외식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친척이나 친구를 바깥에서 접대하기보다는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청 대상은 주로 친척이며 직장 동료나 거래처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친구라 해도 매우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잘 초대하지 않는다.
기자는 한국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는 시나에이(38)에게 부탁, 이란 가정의 모임을 취재했다. 그는 부모의 양해를 구한 다음 기자를 부모 집으로 안내했다. 집에 도착하니 30여명의 일가 친척이 모여 있었다. 얼마나 자주 이같은 모임을 갖느냐는 질문에 시나에이씨는 “거의 매주 가족과 친척이 서로 돌아가며 초대한다”고 말했다.
마침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경까지 아무 것도 먹어서는 안되는 라마단 금식기간. 이들은 소파에 둘러앉아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나누더니 오후 5시15분경 TV에서 라마단 해제를 알리는 기도가 흘러나오자 저녁식사 준비를 서둘렀다.
손님들은 소파를 치우더니 거실 바닥에 흰 천을 깔고 둘러앉았다. 이란 전통요리인 케밥(주로 쇠고기 양고기 닭고기를 꼬치에 끼워 구운 것)과 볶음밥, 반찬 몇 가지가 전부였다. 남편과 아들을 제외한 외간 남자 앞에서 차도르를 벗을 수 없도록 한 이슬람법에 따라 여성들은 차도르를 쓴 채 식사했다. 시나에이씨의 부인은 “친족 모임은 매우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여성들은 머리를 염색하거나 새 옷을 입는 등 정성껏 치장한다”고 말했다.
이날 친족 행사에서 눈에 띈 점은 남성이 접대를 주도한다는 점. 여성이 분주히 부엌을 오가며 접대에 신경쓰는 한국과는 달리 남성이 음식을 준비하고 나르고 치웠다. 시나에이씨는 “이란은 가족 중심 문화가 발달해 남성이 육아 등 가사노동을 많이 맡고 있다”면서 “서구 문화에서 이란 남성을 가부장적이고 독단적인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후세인 테헤란대학 부총장 "대학생 최대 관심사 취업"▼
테헤란 대학은 이란 현대정치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이란 학생운동의 중심지다.
테헤란대 학생들은 1979년 이슬람혁명과 1980년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을 주도했다. 또 1999년에는 이슬람혁명 후 처음으로 보수적인 종교 세력에 정면 도전하는 대규모 학생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집무실에서 만난 후세인 아바시 네자드 테헤란대 부총장(47·사진)은 “이란 대학생은 매우 극렬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은 정치보다 경제적 미래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 참여에 대한 대다수 학생의 견해는….
“하타미 대통령 취임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젊은이들의 사고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최근 교내 여론조사 결과 70%의 학생들이 취업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라고 답한 반면 정치 상황에 대한 관심은 45% 정도였다. 20년 전 학생들이 혁명을 원했다면 요즘 학생들은 개혁을 원하고 있다. 과거 학생 시위는 폭력적이었으나 현재의 학생 운동은 타협과 대화를 선호한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졸업 후 취업이 문제다. 사정이 나은 테헤란대의 경우도 취업률은 6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얼마 전 취업 박람회를 개최했는데 2000명 정도 참석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5000여명 이상이 몰렸다.”
―학생들이 원하는 직장은….
“외국인 회사다. 대기업은 국영형태가 대부분인데 월급이 적어 별로 인기가 없다. 하타미 대통령의 외자유치 정책이 성공하면 취업률이 크게 좋아질 것이다.” ―외국행을 원하는 학생도 많은 것 같은데….
“하타미 대통령 취임 후 외국대학과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많아졌다. 이란의 2위 교역국인 한국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나라 중 하나다. 한국의 14개 대학과 학생 교류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