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레인은 14일 또 다른 변신을 위해 의미있는 ‘실험’에 나선다. 직선제 의회를 구성하고 정부형태를 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바꾸는 것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다.
바레인은 73년 총선으로 의회를 구성했으나 2년 뒤 셰이흐 하마드 빈 살만 알 할리파 전 국왕이 의회를 해산했다. 이후 93년 각계의 저명인사 30인으로 슈라(Shoora·국가자문회의)가 만들어졌지만 임명직이고 입법권도 없어 ‘고무도장’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이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체제의 도입은 엄청난 개혁의 신호탄이 아닐 수 없다.
▼2004년째 직선제의회 출범▼
지난해 여성으로는 사상 첫 슈라 멤버가 된 마리암 알 잘라흐마 박사(39·여)는 “직선제 의회 도입은 99년 3월 즉위한 셰이흐 하마드 빈 이사 알 할리파 국왕이 추진 중인 정치개혁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과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2004년부터는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되는 국회가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표 결과에 따라 독립적인 재판기구와 국민고충처리기구도 만들어진다. 잘라흐마 박사는 “정부는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면서 “여성이 정치와 경제에 적극 나설 수 있게 된 것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바레인은 걸프협력회의(GCC) 국가 중 여성이 가장 활발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나라다. 지난해 10월 GCC에서 처음 출발한 바레인 여성사업가협회(BBS)도 주목의 대상이다.
파티마 하산 자와드 BBS 회장은 “여성은 대사와 차관직에도 1명씩 진출해 있다”면서 “정부는 BBS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중동 최초 모스크도 외부인에 개방▼
바레인은 지난해 9월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 4명의 선수 중 2명의 여자 선수를 내보내 화제가 됐다. 아랍국가 중 여자선수를 올림픽에 내보낸 게 처음이었기 때문. 비록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또 하나의 신기원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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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의 역동적인 경제개방을 주도하는 하마드 타운내의 도서관. 학생들은 이곳에서 세계 첨단 컴퓨터 기술에 대한 각종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
바레인의 개혁 개방의지는 이슬람의 ‘심장’인 모스크(사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GCC 국가 중 모스크를 이슬람교도가 아닌 외부인에게 개방한 나라는 바레인뿐이다. 마나마 시내 올드팰리스가에 위치한 그랜드 모스크(대사원·7000명 수용)는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모스크의 홍보 담당자인 파라하트 알 킨디는 “88년부터 비 이슬람교도에게 개방하고 있다”면서 “이슬람의 실체를 몸소 느끼도록 하자는 게 주목적”이라고 했다. 기자가 알 킨디씨와 얘기를 나누며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수십명의 외국인이 사원 안에 들어왔다. 단 여자 관광객은 사원에서 나눠준 차도르를 머리에 쓴 뒤 입장해야 했다.
GCC 중 유일하게 석유를 수출하지 않는 바레인은 관광산업 육성에 심혈을 쏟고 있다. 3월 중 총 10억달러가 투입되는 인공 관광섬 건설에 들어간다. 6년 동안 5개 섬을 하나로 묶어 최고급 호텔과 동물원, 오락시설, 스포츠센터 등을 짓는다는 것. 매년 200만∼3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바레인 개황 | |
위치 | 사우디 아라비아 동부, 걸프만 중앙 |
기후 | 아열대 해양성 |
면적 | 706.5㎢(강화도 크기) |
인구 | 63만4000명(비국적자 23만명 포함) |
수도 | 마나마 |
주민 | 아랍족 |
언어 | 아랍어(영어도 널리 통용) |
종교 | 이슬람교(수니파 30%, 시아파 70%) |
정부형태 | 군주제 |
국가원수 | 셰이흐 하마드 빈 이사 알 할리파 국왕 |
의회 | 국가자문회의(의원수 40명, 임기 4년, 임명직) |
1인당 GDP | 1만3700달러(99년) |
화폐 | 바레인 디나르(1달러〓0.376디나르) |
바레인 약사 | |
1880년 | 영국의 보호령 |
1971년 8월 | 영국에서 독립 |
73년 12월 | 의회 구성 승인하는 신헌법 발효로 총선 실시 |
75년 8월 | 국왕, 의회해산 |
93년 1월 | 슈라 구성 |
94, 95년 | 실업증가와 경제불평등에 따른 반정부 시위 |
96년 1월 | 시아파 폭동 |
99년 3월 | 셰이흐 하마드 빈 이사 알 할리파 국왕 즉위 |
2001년 1월 | GCC 회원국, 상호방위조약 체결 |
2월 | 직선제 도입 등 묻는 국민투표 예정 |
2004년 | 총선 실시 예정 |
▼석유 수출 않는 대신 관광산업 집중 육성▼
지난해부터 가속화된 바레인의 개혁 개방 물결은 내부적 갈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내부적 갈등은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슬람교도 중 소수인 30%의 수니파가 다수인 나머지 시아파를 지배하면서 촉발된 것. 특히 선왕(先王)이 38년 동안 강압통치를 해오면서 시아파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급기야 95, 96년에는 대규모 반정부 폭동까지 발생했다.
정정(政情)이 불안해지자 많은 외국기업과 은행들이 주무대를 인근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옮겨가면서 바레인은 중동 제1의 무역기지라는 타이틀을 내줬다. 지난해 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실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해 11월 자유공개시장정책을 펼치고 법과 인권을 존중하는 정치체제를 도입하겠다는 등의 변신을 선언했다.
강옥영 한빛은행 바레인 지점장은 “부의 공정한 분배와 종파를 가리지 않는 동등한 경제활동의 실질적인 보장이 국가통합의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
▼자와드 여성사업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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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여성사업가 협회(BBS)는 바레인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양한 방면에서 지원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초 설립됐습니다.”
걸프협력회의의 6개 회원국 중 최초로 만들어진 여성경제인 모임인 BBS의 파티마 하산 자와드 회장(42)은 BBS가 머지않아 바레인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와드 회장은 지난해 9월 말 바레인 내부무 중앙인구등록국에서 발행하는 주민등록증상의 직업란에 ‘여성사업가’로 공식 등록돼 외신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던 인물. 1년 반 동안의 준비기간을 거쳐 BBS를 출범시킨 그는 바레인 여성 경제계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이다.
지적인 외모와 세련된 말투의 자와드 회장은 “BBS의 회원은 현재 50여명이지만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총리가 앞으로 여성 경제인의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사무실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없느냐는 질문에 자와드 회장은 “바레인 여성들은 30여년 전부터 많은 경제 분야에서 활동해 왔다”며 “바레인 정 재계의 주요 인사들은 물론 일반 남성도 여성의 사회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추세”라고 대답했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 지구촌 경제환경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두 자녀의 어머니인 자와드 회장은 결혼 전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5년 동안 유학했다. 전공은 경영학. 슈퍼마켓 체인 등으로 구성된 자와드그룹을 직접 이끌고 있는 맹렬 여성이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일부다처제’의 결혼문화에 대해 넌지시 물었더니 “이제 대부분의 이슬람인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결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특히 젊은이들은 일부다처제를 생각조차 않는다”고 대답했다.그는 “세계가 아랍의 여성경제인들을 주목하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지었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