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의 밤거리는 이슬람 국가라는 선입견을 깰 만큼 예상외로 활기가 넘쳤다. 울긋불긋한 네온사인이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젊은이들이 몰고 나온 고급차도 많이 보였다. 붉은 등이 켜진 한 술집에 들어서자 러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여종업원 서넛이 일어나 반갑게 맞았다. 우리를 태워준 요르단인 운전사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술을, 그것도 여자와 함께 마시는 것은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며 세태의 변화에 혀를 찼다.
다음날 오전에는 시장 근처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 겉보기에는 일반 극장과 다름없었지만 현관 안쪽에는 서양 남녀가 뒤엉킨 포르노 영화 포스터가 즐비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우람한 체구의 직원 두 명이 뛰어나와 앞을 가로막았다.
인구 약 500만명 가운데 96%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인 요르단은 온건한 듯 하면서도 엄격한 전통을 유지해온 이슬람 국가. 요르단은 지금 물밀듯이 밀려오는 서구문화 속에서 이슬람 전통을 어떻게 지켜나갈지를 놓고 큰 고민에 빠져 있다.
요르단에 불고 있는 서구화 바람은 생존을 위한 개방정책의 부산물.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등 자원이 부족한 요르단에서 개방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육책이었다.
99년 후세인 국왕의 서거로 즉위한 압둘라2세 국왕(38)은 개방정책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유일한 항구인 아카바항을 관세자유지대로 지정했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요르단을 중동의 중개무역 중심지로 삼는다는 전략.
이런 개방전략과 정보기술(IT) 산업 육성 정책에 따라 2년 전만 해도 2개에 불과했던 인터넷카페가 지금은 200여개나 생겼을 정도다. ‘북스@카페’의 종업원 예지트 아브고쉬(21)는 “하루에 약 200여명이 찾아와 인터넷 서핑을 즐긴다”며 “고객이 어떤 정보를 이용하는지에 대한 정부의 통제나 감시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관련 다국적 기업인 글로벌원의 영업이사 사미 스메이랏(30)은 “현재 요르단 내 인터넷 사용인구는 8만5000여명으로 중동에서 가장 열기가 높다”고 자랑했다. 그의 책상 위에 놓인 ‘미래의 백만장자가 지금 일하고 있습니다(Future Millionaire At Work)’라는 내용의 영문 팻말은 이 나라 젊은 층의 변모하는 인생관을 상징하는 듯했다.
빈민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위성TV수신용 접시 안테나도 서구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 가운데 하나. 유럽 등지로부터 약 80여개에 이르는 채널을 통해 색깔 있는 서구의 방송이 안방까지 그대로 들어온다.
개방과 서구화는 의식의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 2000년 2월14일 암만에서는 중동국가 사상 처음으로 여성의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5000여명의 남녀 시위대는 ‘명예범죄(Crimes of Honor)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와 피켓 등을 들고 국회의사당과 총리관저 앞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날 시위는 명예범죄를 합법화한 형법 340조의 폐지 건의안이 의회에서 부결된 데 대한 항의였다. 명예범죄란 여성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이나 친지들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되는 것을 말한다.
요르단의 대학가는 다른 중동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표적인 ‘변화의 첨병’이다. 대학 캠퍼스를 걷다보면 몇 걸음을 떼기도 전에 손을 맞잡고 걷는 남녀 학생들을 수 없이 보게 된다.
국립 요르단대 대학원생 마우문 아사드(26)는 “대학에서는 이성간의 접촉에 이미 많이 관대해진 상태”라며 “일부다처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서구화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높다. 요르단의 주간지 아사빌이 최근 일반 국민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요르단이 현재 이슬람 정신으로 다스려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4%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여성 인권보장 시위가 벌어진 지 아흐레 뒤인 지난해 2월 23일에는 80명의 하원의원 가운데 53명이 서명한 진정서가 하원의장실에 제출됐다. 이슬람 정신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따라 엄격하게 통치해야 한다는 내용. 의원들의 집단 행동은 명예범죄 반대 시위 등 급속한 서구화 분위기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다.
요르단대 총학생회 운영부장인 라니아 바드란(21·여·이슬람법대 4년)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향상되는 등 개방이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면서도 “지나친 서구화는 신앙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사회의 정신을 해치므로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르단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개방의 물줄기와 이슬람 전통을 지키려는 수구의 방파제가 부딪치며 큰 파도를 일으키는 변화의 현장이었다.
▼거액 결혼지참금 일반화 "능력없는 남성은 평생 독신"▼
이슬람 국가에서는 공식적으로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 코란에 경제적인 능력이 있고 모든 부인에게 공평하게 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다는 구절이 있기 때문.
그러나 실제로는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국가에서 단 한번도 결혼을 하지 못하고 총각으로 늙는 남자들이 많다. 결혼비용이 턱 없이 많이 드는 데다 이를 모두 신랑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랑은 신부 부모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는 지참금 외에도 체면을 중시하는 아랍 사회의 전통에 따라 빚을 내서라도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 이 때문에 어렵게 한 결혼 때문에 평생을 빚에 쪼들리며 사는 부부가 많다.
곧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암만의 택시운전사 사아이드 아부갈리온(31)의 경우를 보자.
한달에 약 150디나르(약 26만원) 정도를 버는 그가 그동안 저축해 놓은 돈은 약 3000디나르 정도. 신부 부모에게 줄 지참금 8500디나르(약 1500만원)에도 크게 모자라는 액수다. 그는 3000디나르 가량은 은행에서 융자를 얻을 계획이지만 그만한 돈을 빌리려면 20%의 선이자를 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엄청나다. 나머지는 부모와 가까운 친척들의 도움을 받고 결혼식은 가능한 한 검소하게 치러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지만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태산 같다.
여성이라고 해서 결혼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15세가 되면 결혼할 수 있기 때문에 20세가 넘으면 혼기를 놓친 노처녀로 취급받는다. 남성들도 가능한 한 20세가 안된 어린 신부와 결혼하고 싶어한다. 심지어 20년 연하의 여성과 결혼하는 것도 당연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 학업 등의 이유로 결혼이 늦어질 경우 자칫하면 평생 노처녀로 살아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前하원의장 아라비야트 "전통-개장 공존 확신"▼
“요르단은 자존심과 이슬람 고유의 전통 문화가 강한 나라입니다. 불건전한 서구문화가 아무리 유입되더라도 이슬람 정신을 잃지 않는 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91∼93년 요르단 하원의장을 지낸 압둘라티프 아라비야트 이슬람행동전선 당수(67)는 “현재 요르단 사회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개방과 전통의 유지는 얼마든지 공존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그는 “요즘 요르단에서 이슬람 율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슬람의 정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성향의 14개 정당 및 정치단체의 대표격인 아라비야트 당수는 요르단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해 “요르단은 인근 아랍권 국가와 비교할 때 상당히 많은 정치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현 선거법은 국왕의 영향력 아래서 일부 후보의 추천이 이뤄지는 등 민초들의 생각보다는 집권층의 의지를 더 많이 반영한 측면이 있어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슬람행동전선은 97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현행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며 후보자를 내지 않아 현재 의회에 의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아라비야트 당수는 “이슬람 사회는 옛날부터 서구보다 훨씬 우수하고 구체적인 형태의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에 대한 근거로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구조인 이슬람 전통 제도 ‘슈라’를 들었다. 이 전통에 따라 이슬람행동전선을 포함한 14개 야권 정파는 매주 한차례씩 정례모임을 갖고 국정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것. 압둘라2세 국왕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그는 “국왕은 젊고 능동적이며 추진력을 갖춘 인물이다. 우리는 그가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며 호의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암만〓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