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드의 나라, 시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요르단과 시리아를 육로로 잇는 나지브 국경을 넘자 지난해 6월 사망한 하페즈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미소를 짓고 있는 대형 선전판이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이후 30년 동안 시리아를 철권 통치했던 아사드 전 대통령의 자취는 아직도 나라 곳곳에 남아 있었다. 수도 다마스쿠스 시내에서도 그의 대형동상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게다가 교복 대신 군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녀 중고생들….
인구가 약 500만명인 다마스쿠스에만 정보 요원이 2만5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시리아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와 관련된 얘기를 나누는 것을 꺼렸다. 어렵게 취재에 응한 사람도 이름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한 인사는 “정보기관에서는 내가 지금 당신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걱정했다. 택시를 타고 가다 언덕 위에 서 있는 웅장한 건물이 대통령궁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내려 사진을 찍으려 하자 택시기사가 “그 곳은 허락 없이 찍으면 안 된다”며 손을 내젓기도 했다.
이 나라에서는 인터넷 이용도 불법행위로 간주된다. 인근 레바논에 있는 서버 컴퓨터에 국제전화로 접속한 뒤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적발되면 처벌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팩스 사용도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이상하리 만치 관대했다. 이슬람교도가 전체 인구의 90% 가량을 차지하지만 종교의 자유는 거의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다. 거리에서 이슬람 복장을 한 여성을 가끔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 이슬람 국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다.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도 법정 공휴일이며 인구의 10%에 불과한 기독교도는 대부분 잘 살아 오히려 무시 못할 계층으로 대접받는다.
시리아 국민이 외부 세계를 접하는 유일한 창구는 위성방송. 벽에 회칠도 하지 못한 빈민촌의 지붕 위에도 위성TV 수신용 접시 안테나는 어김없이 설치돼 있다. 정부도 유럽 등으로부터 들어오는 위성방송만큼은 통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철저한 사회주의 독재국가인 시리아에도 아사드 전 대통령의 둘째아들인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35)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서서히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영국에서 공부한 안과의사 출신인 바샤르 대통령은 개혁 성향이 강하고 외부 세계의 사정에도 밝은 인물. 취임 전의 공식 직함이 시리아 컴퓨터협회장이었으며 컴퓨터를 이 나라에 가장 먼저 도입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는 한 인사는 “바샤르는 매우 겸손하고 지적이며 시리아가 가진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며 “많은 국민이 바샤르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바샤르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취임식에서 아랍식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 경제 개혁과 부정부패 추방 등을 역설했다. 이와 함께 평균 100달러에 불과한 공무원 월급을 25% 인상하는 한편 자본주의식 경제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지난해 11월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 수감됐던 정치범 600명이 석방과 함께 사면 복권됐으며 12월에는 37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은행 설립이 허용됐다. 바샤르 대통령은 주식시장 개설과 고정환율제인 달러 대 시리아파운드화 환율을 변동환율제로 바꿀 것도 검토하라고 지시해 자본주의 시장 경제로의 이행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요구도 거세게 일고 있다. 올해 1월에는 교수 문인 예술가 등 지성인 1000여명이 성명을 내고 정치적 자유와 민주 개혁을 요구했다. 법조인 70명도 같은 달 성명을 내고 표현 및 집회 결사의 자유를 인정할 것과 63년 이후 발령중인 계엄령을 해제할 것을 촉구했다. 모두 아사드 전 대통령 시절에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그러나 바샤르 대통령의 개혁의지가 실효를 거두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가 넘어야 할 가장 큰 걸림돌은 구시대 기득권층.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각료도 대부분 아사드 전 대통령과 평생을 함께 한 동지들이다. 바샤르 대통령이 이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정도의 정치적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관건이다.
바샤르 대통령이 최근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의 방향은 서구의 방식과는 다르다”고 강조한 것도 구시대 원로들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리아의 한 경제인은 “개혁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며 “현재 진행중인 경제 개혁이 제 궤도에 오른다면 정치 개혁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시리아 약사▼
1946년:프랑스 지배에서 독립
1958년:이집트와 합병, 아랍연합공화국 탄생
1961년:아랍연합공화국 탈퇴
1963년:아랍부흥사회당(바트당) 집권
1970년:고 하페즈 알 아사드 대통령 쿠데타로 집권
1973년:이스라엘과 제4차 중동전
1975년:레바논 내전 개입
2000년 6월:아사드 대통령 사망,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승계
▼시리아 개황▼
위치:지중해 동부(요르단 터키 레바논 등 접경)
기후:지중해성(해안지역) 및 사막기후
면적:18만5180㎢(남한의 약 2배)
인구:1630만명(2000년 7월 현재)
수도:다마스쿠스
종족:아랍족 90% 기타 10%
언어:아랍어
종교:이슬람교 90%(수니파 74%, 알라위파 등 기타 16%) 기독교 10%
정부형태:사회주의 공화국
국가원수: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
의회:단원제(250석)
1인당 국내총생산(GDP):1200달러(1999년)
화폐단위:시리아파운드(1달러〓45파운드)
▼발길 닫는 곳마다 성서의 숨결 가득▼
시리아는 이슬람 국가이면서도 기독교의 발자취가 생생하게 남아있는 나라다. 발길 닫는 곳마다 고대 기독교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전세계의 기독교도가 성지 순례를 위해 시리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약성서 신명기에는 이스라엘의 조상을 ‘유리(遊離)하는 아람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람은 바로 시리아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이 신앙적인 회개를 한 곳도 바로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한국 성경에는 ‘다메섹’으로 표기)다. 다마스쿠스에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곳이라고 알려진 장소도 있다.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승용차로 한시간 쯤 거리에 있는 마룰라 지역은 일반 관광객은 물론 언어학자와 성서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이 지역에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고대 아람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 고대 아람어는 예수가 생존했을 당시 사용되던 언어다.
다마스쿠스에서 북쪽으로 약 350㎞ 떨어진 알레포는 구약성서 사본 가운데 하나인 ‘벤 아셔’ 사본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다마스쿠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인 알레포는 로마제국 시대 이후 중동지역의 상업중심지로 각광을 받아왔다.
시리아 최대의 항구도시인 라타키아에는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동정녀 마리아교회와 산타클로스의 모델로 알려진 성 니콜라스 기념교회도 있다.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향할 때 거쳐갔다는 팔미라도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 유적지 가운데 하나. 이 곳에 남아있는 유적은 대부분 1∼3세기 로마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자동차 5대중1대꼴 '메이드 인 코리아'▼
한국에서 볼 때 요르단과 시리아는 먼 나라다. 항공기 직항편도 없어 이집트나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가야 한다.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이들 나라는 우리에게 가까운 곳이 아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한국이 그리 낯선 나라가 아니었다. 요르단은 물론 친북 성향의 시리아에서도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특히 요르단에서는 압둘라 2세 국왕이 1999년 12월 한국을 방문한 이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요르단 주재 한국대사관의 이종일 참사관은 “지난해부터 한국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 대사관을 찾는 요르단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요르단과 시리아에서 한국의 이미지가 좋아진 데는 한국산 제품이 값싸고 질이 좋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이들 나라의 주요 교역 상대국 가운데 하나다.
1999년 기준으로 한국산 제품은 요르단 수입시장에서 점유율 6위를, 외교관계조차 맺고 있지 않는 시리아에서는 1위를 기록했다.
이들 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한국산 제품은 자동차. 요르단 암만 주재 한국무역관에 따르면 요르단과 시리아 모두 자동차 5대 가운데 1대 이상이 한국산이다. 심지어 한글로 된 국내 관광회사의 로고를 그대로 단 채 운행하는 버스도 볼 수 있다. 요르단에서 시리아로 이동할 때 이용한 차량도 국내에서는 생산이 중단된 한국산 자동차였다.
요르단 하산 공단에서 만난 기업인 아부하짐 알마잘리(50)는 “현대 액센트 승용차를 3년째 몰고 있는데 연료도 적게 드는 데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대 만족”이라고 말했다.
현재 요르단은 중동의 중개무역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인 시리아는 서서히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이행 중이다. 그만큼 한국과의 경제 교류가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
조만간 요르단과 시리아가 우리에게도 그리 멀지 않은 나라로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성철기자>sungchu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