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가 절정에 이른 4일 메카는 세계 100여개국에서 하늘과 바다, 땅을 건너온 순례자 140만명과 내국인 신도 110만명이 몰려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 지난해 공식발표된 순례자는 273만명이었다. 이번 순례에는 인도네시아의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 수단의 오마르 엘 바시르 대통령, 파키스탄의 실권자 페르베즈 무샤라프 장군, 방글라데시의 하시나 총리도 참가했다.
순례자들은 하지 첫날인 3일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 속에 흰 옷을 걸친 채 걷거나차를 타고 ‘미나’평원에 도착해 첫 밤을 지냈다. 이들은 4일 새벽 이슬람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운명 전 마지막으로 설교한 곳인 ‘아라파트’산에 도착해 해질 때까지 기도행사를 가졌다. 아라파트산에서 신도들은 “알라여! 부름을 받고 여기에 왔습니다”라는 코란의 구절을 읊조리며 그간의 신앙활동을 반성했다. 바위산인 아라파트는 구름처럼 몰려든 흰 옷 입은 신도로 마치 산 전체가 눈에 덮인 것 같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아라파트산에는 순례에 나섰던 만삭의 이집트 임산부가 2일 메카에서 출산한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구급차를 타고 도착해 가장 나이어린 순례자로 기록됐다.
순례자들은 메카의 대사원 내에 있는 검은 6면체 성석(聖石) ‘카바’를 향해 죄를 회개하는 한편 세계의 평화와 가족의 안녕 등을 기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파드 국왕은 관례대로 세계 각국의 순례객을 초청했는데 올해는 이스라엘군에 희생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족 1000명을 비롯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북미 등지의 2500명이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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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까닭에 불상사가 생길 것을 우려해 하늘에는 헬기가 날아다녔으며 경찰관들은 곳곳에서 인파를 통제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메카를 관리하는 사우디 당국은 지난달부터 보안병력과 의료진, 경찰 등 수만명을 상주시키는 등 초비상에 들어갔다. 1997년 미나의 순례자 천막촌에 불이 나 343명이 숨졌고 98년에도 미나에서 180여명이 인파에 밟혀 숨지는 등 해마다 불상사가 일어났다.
2년 전 사우디 정부는 몰려드는 인파를 통제하기 위해 내국인의 경우 하지에 참여하면 5년간은 다시 참가하지 못하도록 했다. 나예프 왕자는 “안전을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으며 순례자 형제들도 협조적”이라면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고는 아니지만 인도에서 찾아온 60세 이상 노인 순례객 60여명이 더위와 피로로 숨졌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올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미나 평원 부근에 에어컨 시설이 갖춰진 4만여동의 방화(防火)천막을 설치했으며 메카 대사원 인근에는 임시진료소를 여러 군데 설치했다. 물 1000만 병을 무료로 순례자들에게 나눠주고 물부족에 대비해 물탱크까지 갖춰 놓았다. 또 전염병을 막기 위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많은 우간다 신도에 대해서는 입국을 막았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하지의 의미와 일정▼
하지는 이슬람 신도가 지켜야 할 5대 의무 가운데 하나로 성지 메카를 일생에 한 번 이상 순례하며 정해진 의식을 치르는 것을 뜻한다. 순례기간은 이슬람력 12월 8∼12일이며 올해는 3월 3∼7일에 해당한다. 하지는 ‘이흐람’이라고 불리는, 바느질하지 않은 흰 천 두 장을 두르고 메카 주변의 성지를 순례한 다음 메카에 돌아와 기도를 올리는 것으로 끝난다. 이 동안에는 손톱 발톱을 자르지 않으며 면도를 하지 않는 등 금기 사항을 지켜야 한다.
첫날엔 메카 북쪽의 ‘미나’평원에서, 둘째날은 632년 예언자 마호메트가 운명하기 석 달 전에 마지막으로 설교했다는 ‘아라파트’산에서 기도한다. 셋째날 오후 메카로 돌아와 메카 대사원 내 검은 6면체 성석(聖石), ‘카바’ 주위를 돈다. 카바는 이슬람 신앙의 중심지로 세계의 이슬람 교도가 하루 5차례 이곳을 향해 기도한다. 넷째날에는 악마를 내쫓는 뜻에서 미나평원에 가 돌기둥에 돌을 던지고 다섯째날 메카로 돌아와 카바를 도는 것으로 순례는 끝난다.
한국이슬람중앙성원의 이주하 사무차장은 “하지순례는 5일간이지만 통상 사흘째 희생제가 끝나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