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이슬람과의 대화]富 샘솟는 아랍에미리트연합

  • 입력 2001년 3월 25일 18시 52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관문 두바이 상공으로 비행기가 접어들자 불빛 하나 없던 사막 대신 ‘불의 화원(花園)’이 나타났다. 페르시아만을 비추는 탐조등에 반사된 빌딩군이 화려한 불빛을 내뿜었다. 옆자리에 앉은 두바이의 사업가 후마이드 아흐마드가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라고 알려줬다.

UAE의 중심 에미리트(토후 영지)인 아부다비가 ‘석유’로 부(富)를 쌓은 곳이라면 두바이는 ‘물류’로 부를 이룬 곳이다.

두바이 시를 가로지르는 클릭강을 배를 타고 건너는 통근자들. 클릭강은 두바이 시민의 통근길일 뿐만 하니라 물류 기지인 두바이의 동맥이다. 클릭강변에 정박한 선박들은 물건을 싣고 이란 인도 등지로 출항한다.[두바이=권기태기자]

세계 최고의 부국 가운데 하나인 UAE는 근엄한 이슬람국가라기보다 ‘부유한 상인들의 영지’라는 인상이 강하다.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가 바로 그 출밤점인 셈이다. 폭 40m, 길이 100m의 진입로 양편에는 제너럴 일렉트릭(GE), 제너럴 모터스(GM), 소니, 마쓰시타 등 세계적 대기업의 간판들이 장관을 이뤘다. 자유무역지대의 총 면적은 100㎢. 폭 200m 가량의 인공수로를 통해 화물선은 물론 시추선까지 들어와 있었다. 초대형 물류창고들도 즐비했으며 삼성 LG 등 한국 기업의 창고들도 보였다. 이곳의 아시아 태평양지역 책임자인 압둘라 라시드 루타는 “세계 1700개 기업의 지사가 들어와 있으며 연간 컨테이너 300만개가 이곳에서 중동 각지로 나간다”고 말했다.

두바이 상공회의소 건물은 바람에 부푼 상선의 돛 모양을 하고 있다. 모하마드 압둘라티프 알 바삼 부사무총장은 “두바이는 흔히 ‘아라비아 상인’이라 불리는 ‘바닷길 상인’과 사막 대상(隊商)의 전통이 아직도 살아 숨쉬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아랍 에미리트 구성

에미리트
(토후 영지)
가문인구
(1만명)
아부다비자예드113
두바이막툼 86
샤자술탄 49
라스 알 카이마사큐르 17
아즈만후마이드 16
푸자이라하마드9
움 알 콰인라시드 4

그는 “두바이의 석유매장량은 40억배럴로 940억배럴에 이르는 아부다비에 비하면 턱없이 적어 일찌감치 아라비아 반도 내륙과 이란 이라크 등에 대한 중개무역지로서의 성장 전략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이 실효를 거두려면 모든 외국인이 편리함을 느낄 사회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사막 위의 인공 신도시’. 두바이의 한가운데에 있던 클릭강의 폭을 최대 100m까지 넓히고 도로 전기 수도 전화시스템 등을 갖췄다. 올해 중으로 최고의 번화가인 셰이크 자예드 도로 인근에 첨단기술업체 전용단지인 ‘두바이 인터넷시티’를 완성할 계획이다.

아부다비 시가지는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수백개 이어놓은 것처럼 번화하다. 이곳의 석유 매장량은 940억배럴로 세계 3위.

이곳에서 만난 사업가 마지드 모하마드는 “세금이 일절 없는 데다 값싼 생활비, 많은 외국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 보증금과 임대료 수입 등으로 이곳 현지 사람들은 ‘생활고’란 말을 모른다”고 말했다.

수도인 탓에 공무원 군인 경찰 공기업체 직원이 유난히 많고 처우도 좋다. 마지드씨는 “육군 대위의 연봉이 5만달러(약 6500만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거리를 돌아다니는 경찰차량도 BMW나 벤츠 등 모두 고급 차종이었다.

그러나 현지 아랍인들이 이처럼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각종 육체 노동과 잡역부 운전사 등 기피 업종은 모두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의 외국인들이 맡고 있다. 외국인의 대부분은 영주권이 없는 장기 체류자 신분. 상주인구 중 외국 국적 보유자가 절반을 넘는다.

이 같은 상황은 이 나라의 외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란 이라크 등 강경 이슬람 국가와 서방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주의 외교 정책을 펴고 있다. 걸프만 연안국 가운데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

이슬람 문화도 다른 이슬람권 국가에 비해 융통성이 많다.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 신자로 수니파가 약 80%, 시아파가 약 20%지만 종파간에 별다른 갈등이 없다. 또 힌두교 사원도 있고 교회와 성당도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기는 하지만 현지 아랍인들 중에는 무료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다. 대중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영화 음악 출판 등이 잘 발달되지 않아 활기를 쏟을 출구가 적기 때문이다. 아부다비에서는 폭주족이 요란하게 밤거리를 질주하는 모습도 보였다.

아부다비에서 만난 대학생 함단 알 누아이미는 “내년쯤 친구들과 미국에 건너가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을 생각”이라며 “풍요롭지만 뭔가 활기차게 몰두할 ‘광장’을 원하는 젊은이들은 외국행을 원한다”고 전했다.

▼자예드 UAE대통령 30년간 6번 연임 사실상 군주▼

아부다비의 최고 스타는 가수나 영화배우가 아니라 셰이크 자예드 아랍에미리트연합 대통령(83)이다. 1971년 토후들의 선출로 대통령이 된 이래 30년간 여섯 번을 연임했다. 사실상의 군주나 다름없다.

그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지난해 11월 26일 그가 미국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마치고 귀국할 때 국민이 보여준 모습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마다 ‘대통령님, 사랑해요’란 스티커를 붙였다. 그의 도착을 전후해 사흘간 공항에서 시내에 이르는 연도에는 프랑스제 향수가 뿌려졌다. 또 500만개의 색등(色燈), 60만개의 국기, 5만 송이의 꽃, 가로 세로 200m나 되는 초대형 국기로 장식됐다.

그의 인기 비결은 헐벗은 베두인족 사회를 세계 최고의 부국 중 하나로 만든 업적 때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두바이무역관의 임의수 관장은 “그는 아부다비에 집중 매장된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을 다른 에미리트에도 적절히 나눠줘 민심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고령이라 누가 후계자가 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연방군 지휘권을 쥐는 셰이크 칼리파 자예드 아부다비 왕세자가 토후자리와 대통령직을 이을 것으로 대부분의 중동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UAE의 정치체제…군도 연방제 대통령-토후 권력분점▼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중동의 이슬람국가 가운데 연방제를 채택한 유일한 나라다.

아라비아 반도 동쪽 페르시아만 연안의 토후(에미르)가 다스리는 영지(에미리트) 7개가 모여 연합국가를 이뤘으며 군주국가의 성격이 강하다.

권력구조는 대통령 중심제지만 토후도 권력을 일부 나눠갖고 있다. 두바이 토후(셰이크 막툼)이 부통령 겸 총리를, 아들인 셰이크 모하마드가 국방장관을 맡고 있다.

토후가 지명하는 임기 2년의 40명으로 구성된 연방평의회(FNC)가 의회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실제론 자문기구일 뿐이다. 정당은 없다.

연방이 형성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랍민족의식이 강해졌기 때문. 영국 점령군이 1971년 철수하면서 바로 독립국가가 선포됐다. 중동 전문가들은 “1958년 아부다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경제력을 갖추게 된 것이 연방 형성의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아부다비가 연방 재정의 70%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에미리트별로 독자적으로 군대를 운영해 오다 97년 연방군 체제를 완성했다. 96년 아부다비를 정식으로 연방국 수도로 정했으며 정식 헌법도 채택됐다.

카타르와 바레인도 한때 연방 참여를 준비했으나 70년 독립과 함께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약사▼

1820 영국군 침략

1892 영국 보호령 됨

1958 아부다비에서 석유 발견

1966 두바이에서 석유 발견

1968 영국, 71년까지 군대 철수 발표

1971 독립, 유엔 가입

1999 오만과 국경협정 체결

▼개황▼

국명:아랍에미리트(The United Arab Emirates)

인구:294만명(상주인구 기준)

인종구성:에미리트계 19%, 기타 아랍계 23%, 남아시아계 50%, 유럽 5%

수도:아부다비(인구 112만명)

면적:8만3천600㎢(충북을 제외한 남한 면적과 비슷)

기후:아열대

주요자원:원유, 가스

언어:아랍어

정부형태:대통령 중심제(토후 가운데 선출)

1인당 GDP:1만7730달러

(자료: EIU 연감 2000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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