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이슬람과의 대화]말레이계 우대 다민족갈등 줄여

  • 입력 2001년 4월 29일 19시 26분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에 만난 중국계 이민 3세 모하마드 케니 탄(40)은 보통 중국계와는 달리 이슬람 신자이다. 그는 원래 도교 신자였지만 1995년 말레이계인 부인(36)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이슬람교도가 됐다.

말레이계는 태어날 때부터 이슬람교도가 되고 또 같은 이슬람교도와의 결혼만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개종자교육재단(PERKIM)에 개종 신고를 한 뒤 탄치멩이라는 본명까지 이슬람식으로 바꾸었다. 97년 결혼 때는 3일 동안 이슬람 교육을 받기도 했다. 탄씨와 같은 개종자들은 극히 적기는 하지만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개종을 했다고 해서 일상생활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그는 “결혼 후 좋아진 것이 있다면 두 사람이 함께 있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혼인 이슬람교도가 호텔 등 밀폐된 공간에서 이성과 있다가 들키면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받는다.

그는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싫지만 어차피 중국계는 소수이기 때문에 이 나라 법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며 “대다수 중국계는 말레이계와의 갈등보다는 사회적 안정을 원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수도 콸라룸푸르
독립광장 앞 재판소 건물

탄씨가 경영하는 맥주집에 찾아온 인도계 이민 2세인 싱아(38·컨설턴트)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자신의 집에 말레이계 무슬림 여성이 몇 달간 머문 적이 있지만 서로 아무런 갈등이 없이 좋은 친구가 됐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서는 말레이계와 중국계, 인도계가 심각한 마찰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이슬람을 국교로 삼고 있는 말레이시아. 그러나 2330만 인구 중 이슬람 신자는 53%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불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 신자들이다. 이 같은 비율은 거의 민족 구성 비율과 일치해 중국계는 대부분 불교 신자, 인도계는 힌두교 신자이다.

언뜻 보면 종교간, 민족간 긴장이 팽팽할 것 같은 말레이시아 사회가 최근 30여년간 특별한 갈등 없이 나름대로 안정과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말레이시아 국립대 압돌 라우 교수는 “근면과 성실을 가르치는 이슬람식 규율과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부미푸트라 정책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부미푸트라는 ‘대지의 자식’이라는 뜻으로 이민족이 아닌 말레이계를 일컫는 말레이 말. 라우 교수는 “부미푸트라 정책은 경제적 약자인 말레이계에게 기회를 확대하고 우대함으로써 민족간 갈등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6세기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 등의 지배를 받아온 말레이인들은 서구 열강에 자원을 수탈 당했다. 1955년 독립 후에는 19세기부터 들어온 중국계 노동자들의 후손에게 이미 모든 상권을 빼앗긴 상태였다. 인도계 이민자들 역시 상당수가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에 올랐지만 교육받지 못한 대다수 말레이계는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계 상권의 지배력이 더욱 커지자 69년 말레이계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유혈충돌이 빚어져 수백명이 희생됐다. 그 때 정부가 갈등을 잠재우려 채택한 것이 바로 부미푸트라 정책. 경제 교육 등 전 분야에서 말레이계를 우대해 빈부 격차를 줄여나간다는 것. 그 후 말레이계가 소유한 부(富)의 비중은 70년 1.5%에서 95년 20.6%로 높아졌다. 하지만 중국계는 아직도 전체 부의 40.9%를 차지하고 있다.

술탄을 중심으로 한 입헌군주제와 엄격한 이슬람식 규율도 갈등 억제와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근대화를 주도한 마하티르 총리는 이슬람식 가치를 강조하는 한편 강력한 리더십으로 인종간 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막았다.

콸라룸푸르는 선진국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위용을 자랑했지만 시내에서 마주친 말레이계 여성은 거의 모두가 무슬림 복장을 하고 있어 규율의 엄격함을 실감나게 했다. 일부 주에서는 여성들이 머리에 스카프를 쓰도록 하는가 하면 운동선수라도 여성은 짧은 운동복을 입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무스타파 하산 말레이시아이슬람교육원(IKIM) 부원장은 “말레이시아의 이슬람은 물질과 정신, 개인과 사회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라며 “이를 위해 엄격한 이슬람식 규율을 실천하는 성실하고 근면한 이슬람교도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콸라룸푸르〓이영이특파원기자>yes202@donga.com

▼여성가정개발부 샤리자트 잘릴 장관▼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 중에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한 편이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활동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으며 여성의 사회활동으로 인한 가정 공동화 현상도 심각하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월 발족된 여성가정개발부의 샤리자트 잘릴 장관을 만나봤다.

―여성가정개발부의 발족 취지는….

“일하는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여성은 국가의 중요한 인적자산이다. 각 정부 부처가 예산을 집행하거나 정책을 수립할 때 여성의 사회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는 어느 정도인가.

“이슬람이 여자의 사회활동을 막는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예언자인 마호메트의 부인 시티 칼리저는 마호메트의 보스이자 최초의 커리어 우먼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전체 노동력의 44%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적은데….

“그렇다. 장관 중 여성은 아직 4명밖에 없고 여성 국회의원도 10%선에 불과하다. 또 농업 등 전통적인 부문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은 반면 기술이나 산업 등 새로운 분야에서는 아직 여성의 활동이 부진하다. 정보기술(IT) 분야나 전문직 여성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

―말레이시아가 안고 있는 가정문제는….

“최근 결혼은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또 맞벌이 때문에 자녀교육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가정개발부는 우선 실태를 파악해 통계를 낸 뒤 탁아소를 설립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을 할 계획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교육을 도울 수 있는 대가족제도도 권장하고 있다.”

<콸라룸푸르〓이영이특파원기자>yes202@donga.com

▼약사▼

1403년 이슬람을 국교로 정한 말라카왕국 성립

1511년 포르투갈 점령

1641년 네덜란드 점령

1824년 영국이 지배권 확보

1874년 영국의 보호령

1941년 일본 점령

1948년 영국과 협정으로 말라야 연방 형성

1955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말레이시아 형성

1965년 싱가포르 분리 독립

1981년 4대 총리에 마하티르 모하마드 취임

▼개요▼

인구 2330만명 위치 적도 북단에 위치. 남쪽은 싱가포르, 북쪽은 태국과 접경 면적 32만9758㎢(13개 주와 2개 연방영토로 구성)국가형태 입헌군주제 인종 말레이계(58.1%) 중국계(24.3%) 인도계(6.9%) 기타(10.7%)언어 말레이어(인종간에는 영어로 통용)

종교 이슬람교(국교·53%) 불교(17.3%) 기독교(2.6%) 힌두교 등

(27.1%)1인당 국민소득 3390달러 실업률 2.9% 외채 412억달러

외환보유고 299억달러(자료: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2000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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