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남편이나 아들, 오빠 등 가족 구성원이 아닌 외간 남성과 마주치는 일을 금기시하는 이슬람 전통 때문이다.
여성 전용 구역에서도 비키니 형태의 수영복은 착용할 수 없으며 차도르 형태의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
이런 차림으로 수영을 즐기기는 힘든데다 몸매를 뽐낼 대상도 없어 여성 전용 해수욕장은 거의 언제나 비어 있다시피 한다.》
이슬람교는 ‘여성의 신체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여성은 얼굴 외에는 신체를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프가니스탄 등 3개국은 8세 이상의 여성에게 차도르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여성에게만 굳이 이처럼 복장을 제한하는 것은 분명 남녀차별은 물론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 테헤란에서 만난 한 여성 공무원(23)은 “차도르 착용을 강요하는 것은 각자가 가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슬람권 국가의 공식적인 해석은 “차도르 착용은 문화적 관습에 따른 것일 뿐 여성 인권 탄압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여성의 취업과 교육 등 사회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란의 대통령 직속기구, 여성참여센터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 같은 견해를 보였다. 이란의 중장년층 여성도 대부분 “신성한 여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며 차도르 착용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그렇지만 이집트 등 상당수의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의 차도르 착용 관습이 이미 깨어진 지 오래다. 복장뿐만 아니라 참정권은 물론 정치활동, 이혼 요구권, 운전 등 각 방면에서 여성의 자유를 적극 보장하는 추세다. 해외에서 교육받은 여성이 늘고 있는 데다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등 서구에서 교육받은 지도자가 대거 등장해 개혁개방정책을 강력히 추진함으로써 이슬람 국가의 여권(女權)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CNN을 비롯한 외국의 위성방송과 인터넷의 보급은 은연중에 개방과 변화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슬람권 여성을 상징해온 차도르만 해도 90년대 이후 상당수의 국가에서 강요가 아닌 선택으로 바뀌고 있다. 착용이 의무화된 나라에서도 온 몸을 감싸는 검은 망토 스타일의 전통 차림은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형 약식 차도르 ‘헤자브’로 바뀌고 있다.
이집트의 카이로 대학 캠퍼스 내를 오가는 여학생 가운데 차도르 차림을 한 학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나마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는 시늉만 한 경우도 많지 않았다.
이슬람 국가에서 행해져온 ‘명예살인’도 국제 인권단체의 거센 항의와 교육 수준 향상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명예살인이란 부정을 저지른 여성을 가문의 수치라며 가족이 살해해도 처벌을 하지 않는 구시대의 관습. 지난해 요르단에서는 25건, 이집트에서는 50건, 예멘에서는 400건 정도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요르단 수도 암만의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명예살인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어린 여학생들까지 참가한 시위대는 “여성 없이 남성 없다. 명예살인 타파하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시위에 참석한 한 택시 운전사는 “명예살인을 저지른 범인에게 6개월에서 1년형 정도의 가벼운 선고가 내려진다”면서 “여성의 희생을 조장하는 악법은 철폐돼야 한다”고 말했다.
바레인의 의회 ‘슈라’에는 4명의 여성 의원이 있다. 지난해 9월 바레인 사상 첫 여성의원이 된 마리암 알 잘라마 박사(39)는 “바레인은 1932년 아랍 이슬람 국가 중 가장 먼저 여성의 학교 입학을 허용했으며 현재 남녀간의 임금 격차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슬람 국가의 여성 권익 실태 | |
국가 | 내용 |
이란 | 여성 부통령, 여성 의원 35명, 여성 기도 주관 허용, 여성 경찰대 창설 |
사우디아라비아 | 유엔 여성차별 철폐조약 가입 |
쿠웨이트 | 여성 참정권 부여 추진 |
카타르 | 여성후보의 지방자치선거 투표와 출마 허용 |
요르단 | ‘명예살인’ 처벌 법규 강화 |
이집트 | 여성의 이혼권리 법안 통과 |
오만 | 의회에 여성 2명 할당 |
모로코 | 중혼 금지, 미성년 여성의 혼인 금지에 관한 법 제정 |
바레인 | 여성의원 4명, 여성경제인 모임 결성 |
아랍에미리트 | 여성의 택시 운전 허용 |
보수적인 이슬람 왕정국가 사우디아라비아도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99년 말 여성에게도 ‘주민등록증’을 발급했으며 지난해에는 79년 유엔이 제정한 ‘여성차별 철폐조약(CEDAW)’에 가입했다. 이는 여성의 자동차 운전을 금지할 만큼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여건을 고려해 본다면 획기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식민지배 탓으로 여성 정책이 개방적인 모로코에서는 최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두드러진다. 최근 2∼3년 사이에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남녀 공학으로 바뀌었고 여성의 상속 및 이혼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의회가 이혼법과 가족법 개정을 거부하고 있어 카사블랑카를 중심으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시위가 자주 열린다. 무라스 부할리 공업개발청장(49)은 “상속법이 기본적으로 이슬람의 교리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개정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그렇지만 모로코 회사가 대졸 여성을 채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모로코 국영항공에 최신예 보잉 747기를 모는 여성 조종사가 3명이나 탄생하는 등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여성진출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이란)·카사블랑카(모로코)·암만(요르단)·마나마(바레인)〓정미경·백경학·홍성철·이종훈기자>
▼이란 女의원 엘리히 쿨러히▼
“이란은 최근 수년간 여성권리 찾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나타난 나라입니다.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 부인을 대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란의 35명 여성의원 중 한 명인 엘리히 쿨러히 의원은 지난해 이란에서 여성권리 신장을 상징하는 두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 경찰대 창설과 종교 집회시 여성이 기도를 주관할 수 있게 된 것.
여성 경찰은 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라졌다가 지난해 10월 가정폭력 성폭행 등 여성 관련 범죄를 전담하기 위해 부활했다. 자동소총까지 갖춘 이들 여성 경찰대원은 차도르 차림이지만 남성 경찰관과 마찬가지로 일반 치안업무도 맡고 있다.
예배시 여성이 기도를 인도하게 된 것도 이슬람국가에서는 혁신적인 조치. 그동안 여학교는 하루 다섯 번의 예배 때마다 남성 성직자를 외부에서 데려와야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쿨러히 의원은 “이같은 여권 신장 조치는 작지만 의미있는 것들”이라며 “이는 모두 여성의 의회 진출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번 이란 총선에서 여성 입후보자는 전체의 7.2%인 424명이었으며 이중 35명이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이전 국회의 여성의원이 14명에 불과했던 데 비해 배 이상 늘어난 것. 특히 수도 테헤란에서는 입후보자 860명중 15% 가량인 125명이 여성이었다.
쿨러히 의원은 “대학 입학생의 60%가 여성일 정도로 교육에 있어서 남녀 차별은 없다”면서 “다만 현재 대졸 여학생의 취업률이 남학생의 절반 수준이라 여성 의원들이 여학생 취업을 돕기 위한 국가 기관 설립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정미경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