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경제위기를 맞은 한국에서는 무엇보다 대량해고의 아픔을 잊을 수 없다. 잉여인력은 가차없이 내보내는 미국식 경영합리화가 구조조정의 핵심이었다.
일본에서도 실업의 충격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실업률이 5.4%를 넘어 전후 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고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일본 최대 통신회사인 NTT가 지난달 전 사원 14만명 중 10만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종신고용제의 대명사’인 마쓰시타전기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기업이 10∼30%의 인력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우리 같으면 노동조합이 파업을 선언하고 거리로 뛰쳐나올 법한, 엄청난 규모의 인력감축이다.
그러나 일본 기업의 노조는 오히려 이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NTT의 경우를 보자. 인력감축이라고 해도 10만명의 사원을 무조건 자르는 게 아니다. 관련자회사를 신설, 이들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다만 51세 이상인 5만5000명은 임금의 15∼30%가 깎인다. 50세 이하인 4만5000명은 급여수준은 비슷하지만 각종 수당이 없어진다. 나머지 업체도 조기퇴직 등과 함께 자회사 전출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연재기사▼ |
- ①英축구대표팀 에릭손감독 상징성 |
한편에서는 사원의 근로시간을 단축해 실질임금을 깎는 대신 해고를 최소화하는 ‘워크 셰어링’(Wark sharing)도 눈길을 끈다. 이 제도는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때 찬반 논란이 있었지만 경영자측이 당장 경영합리화에 도움이 안 된다며 반대했던 것이다.
일본에서는 반도체장비 업체인 도와가 주 3일 휴무제를 적용하고 임금을 3% 인하했으며 최근 산요전기 노사가 이 제도 도입에 합의하는 등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경영자단체인 일경련(日經連·한국의 경총에 해당)과 노조연합체인 연합(連合·한국노총에 해당)도 워크 셰어링을 적극 활용하기로 합의하고 공동연구에 착수한 상태다.
이밖에 중소기업들은 거래업체에 자사 사원을 일시적으로 내보내고 임금 중 30∼50%를 대신 지급하는 등의 묘안을 짜내고 있다. 가족 같은 사원을 자르기도 힘들거니와 당장 어렵다고 사원을 해고하면 나중에 숙련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
‘화끈한’ 인력 구조조정을 겪은 우리에게 일본의 구조조정은 어찌 보면 ‘편법’이라고 할 만큼 미온적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일본 기업이 아직 위기감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또 한국은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 개인들이 죽기살기로 다시 일어선 덕분에 경제회복이 앞당겨졌다는 분석도 있다.
인력수급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무자비한 미국식 경영합리화와 사원을 가족처럼 여기는 일본 기업의 전통적인 온정주의. 어느 쪽이 경제위기 극복에 도움이 될지는 일본의 경우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