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선보인 올리버 스톤 감독(사진)의 새 영화 ‘레이건이 저격당한 날(The Day Reagan Was Shot)’은 한번쯤 짚고 넘어갔어야 할 뉴스였다. 이 영화는 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저격당했을 때 미국의 위정자들이 어떻게 위기에 대처했는가를 다룬 영화다. 스톤 감독의 작품이 늘 그렇듯이 이 영화도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에서 당시 제임스 베이커 백악관 비서실장, 캐스퍼 와인버거 국방장관 등 레이건 정권의 실세들은 위기 속에서 우왕좌왕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은 권력의 공백을 틈타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한 미국 언론의 시선은 곱지 못했다. 과거 스톤 감독의 작품들에 대한 비판은 주로 지나친 진보성과 진실에 대한 자의적 해석에 그 초점이 맞춰졌으나 이번에는 영화의 사회적 책임에 모아졌다.
‘플래툰(86년)’ ‘JFK(91년)’ ‘닉슨(95년)’ 등 스톤 감독의 영화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었던 미국의 진보적 언론매체들마저 영화 ‘레이건이 저격당한 날’은 “사회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영화”라며 날을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7일 “현재와 같은 위기상황에서 이 영화가 피상적으로 미국 정치지도층의 분열을 묘사한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도 같은 날 “이 영화에서 그려진 국가위기 상황은 거의 코미디 수준”이라며 “창작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스톤 감독이 무책임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가세했다.
혹평에 화가 났던지 스톤 감독은 8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권력자들은 대 테러 전쟁이든 대통령 저격이든 국가적 위기에 대처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면서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서 입을 다무는 것이 ‘사회적 책임’이냐”고 반박했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리버럴하다고 해서 다 양심적인 것은 아니다.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것, 튄다는 것의 이면에는 자주 상업성이 숨겨져 있다.
이 논쟁은 9·11 테러와 대 테러전쟁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애국주의와 미국 제일주의 열풍 앞에서 그들 역시 무력했기 때문이다.
CNN 등 주요 방송들은 전쟁이 막바지에 달하면서 미국과 탈레반을 아예 ‘우리’와 ‘그들’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미국 민간언론감시단체인 ‘프로젝트 포 엑설런스 인 저널리즘’은 지난달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테러전 이후 미 언론이 국무부 국방부 등 정부부처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비율이 7배 이상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레이건이 저격당한 날’과 같은 영화가 환영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뉴욕타임스 등은 테러전이 유발한 인권 침해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미국과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균형있게 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스톤 감독이 훗날 이번 테러전쟁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시각에서 접근할까. 그 영화 또한 화제와 논란을 몰고 올 것이 틀림없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