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날개없는 추락<7>]한-일 전문가 특별대담

  • 입력 2002년 3월 4일 18시 12분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연구원(왼쪽)과 고사이 유타카 니혼게이자이 연구센터 회장
박재하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연구원(왼쪽)과 고사이 유타카 니혼게이자이 연구센터 회장
《3월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금융불안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과연 일본 경제에 희망은 있는가. 시리즈 ‘일본 경제, 날개 없는 추락’을 마치면서 전문가 대담을 통해 그 답을 모색해 보았다. 대담은 예리한 경제분석으로 정평이 난 고사이 유타카(香西泰·69) 니혼게이자이 연구센터 회장과 박재하(朴在夏)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연구원 사이에 이뤄졌다. 두 사람은 지난달 28일 오후 도쿄(東京) 니혼게이자이연구센터 회장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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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하 연구원〓3월 말 결산을 앞두고 금융위기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3월 금융위기의 배경이 무엇이고 실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고사이 유타카 회장〓일본에는 1940년대부터 해마다 3월 위기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과거와 달리 몇 가지 문제가 더 겹쳤습니다. 첫 번째는 4월1일부터 실시되는 예금전액보호제의 폐지이고 두 번째는 은행의 특별검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검사 결과 드러날 부실채권 실태에 대해 모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또 주가하락으로 인해 3월 말 결산에서 일부 은행들이 자본 부족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작년 하반기부터 대형 도산이 잇따르고 있는데 은행들이 전혀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일부에선 공적자금을 넣으면 된다고 하지만 부실채권은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여기저기 지뢰가 널려 있는 상황입니다. 기업의 과잉채무, 은행의 부실채권이 심각하지요. 운이 좋으면 지뢰를 안 밟을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 연구원〓외국전문가나 신용평가기관에서는 일본이 3월 위기를 넘기더라도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다시 위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3월 이후 경제상황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고사이 회장〓정부는 금융충격을 줄이기 위해 다이에 등 부실기업에 계속 자금을 지원하고 있지요. 이는 당초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얼마간의 희생을 치르더라도 과감한 구조개혁을 추진하겠다던 방침에서 크게 U턴한 것입니다. 즉 응급조치로 문제해결을 늦추겠다는 것으로 계속 불안요인은 남을 것입니다. 처리해야 할 부실기업은 고통이 따르더라도 신속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은행이 대기업의 채무를 회수하지 않고 계속 자금만 쏟아 부으면 대출 능력이 줄어 유망 중소기업에 갈 돈이 없어집니다. 커다란 폭발이 없다고 해서 안전해졌다고 볼 수는 없지요.

▽박 연구원〓일본의 거품 붕괴 과정에서 건설 부동산 유통산업이 1차적인 타격을 받아 관련기업이 도산하고 있습니다. 그 여파로 부실채권을 떠안은 금융기관이 어려워졌고요. 그러나 한편에서는 장기불황 속에서 제조업도 활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고사이 회장〓눈앞의 문제는 3월 말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역시 산업 전체의 문제가 큽니다. 일본은 임금이 높고 토지가격 등 고비용 때문에 제조업체의 수익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아무도 일본에 투자하지 않고 해외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투자가 감소해 산업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용과 소비가 침체돼 디플레를 낳는 악순환으로 접어들었지요. 일본이 경쟁력을 자랑하던 산업은 별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신산업인 정보기술(IT)에서도 경쟁하려는 의욕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박 연구원〓일본의 불황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닙니다. 10년 동안 장기불황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왔지만 회복은커녕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또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고사이 회장〓일부에서는 1990년 거품 붕괴 처리가 늦어져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졌다, 또 일본 은행이나 정부의 재정정책이 잘못돼 디플레를 불렀다는 등의 주장이 있습니다. 저는 그보다도 경제 전반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냉정하게 보면 거품기의 주가나 부동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았으니까 떨어지는 것이 당연했지요. 문제는 이에 대비하지 못한 은행에 있습니다. 지가하락, 주가하락도 따져보면 국내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수입이 늘어나 국내투자가 부진해졌기 때문이지요.

정부는 1990년대 초 경제가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 철저히 부실채권 처리에 착수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외면하고 확대예산으로 경기활성화를 꾀했습니다. 돈을 퍼붓자 경기가 살아나는 듯했지만 지원을 중단하면 다시 나빠졌습니다. 그때마다 정부는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금리를 낮췄습니다. 그 결과 재정적자는 늘어나고 금리는 제로수준이 돼버렸지요. 외과수술로 환부를 도려내야 할 환자에게 진통제만 먹이다보니 더 이상 약효도 없어졌습니다.

▽박 연구원〓일본은 이미 디플레 악순환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한계가 많습니다. 막대한 정부부채 때문에 재정정책을 동원할 수도 없고 신용경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통화정책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서는 디플레 타개를 위해 인플레 목표정책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역시 실효성이 의문스럽습니다.

▽고사이 회장〓금융완화나 재정지원 인플레목표정책 등 여러 정책을 거론할수록 경제는 더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것은 은행이 수익률을 높여 신용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금금리는 낮추고 대출금리는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은행이 부실해진 것은 부실기업 리스크를 흡수할 만큼 대출금리가 높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리스크에 맞게 대출금리를 조절해 수익률을 올리면서 부실채권을 처리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정부 지원으로 연명책을 쓸 수는 없지요. 부실채권을 처리하면 실업자가 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고용문제는 실업보험 등으로 충분히 지원해 다음 일자리를 찾는 것을 돕는 수밖에 없지요.

▽박 연구원〓고이즈미 내각은 출범당시 ‘성역 없는 구조개혁’을 내걸어 국민적 지지를 얻었지만 요즘에는 구조개혁보다는 경기활성화 쪽으로 돌아선 것 같습니다. 지난달 27일 발표한 디플레이션 종합대책도 냉담한 반응을 얻고 있는데요.

▽고사이 회장〓고이즈미 내각은 지난해 아오키건설 마이카루 등을 도산시키며 구조개혁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올 들어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 경질 이후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소신을 펴지 못하고 눈앞의 디플레 저지에만 매달리고 있습니다. 쉽게 디플레를 해결할 수 없다면 디플레 속에서 안심하고 살게끔 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 대신 세제개혁을 통해 증시 등 자본시장을 살리는 쪽에 주력해야 합니다. 개인 금융자산이 1400조엔이나 되지만 개인의 주식투자는 극히 미미합니다. 은행예금에 집중된 개인투자자를 증시로 유도하면 증시도 살고 기업의 자금난도 숨통이 트이게 되지요.

▽박 연구원〓일본은 최근 엔저(低)가 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이라며 용인하고 있지만 아시아 각국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습니다. 엔저는 각국 통화의 약세경쟁을 초래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떠올랐지요. 일본 경제상황과 주변국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앞으로 엔화는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요.

▽고사이 회장〓엔화 구매력만으로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달러당 150엔, 세계은행은 145엔이 적정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40∼170엔까지 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기대한 만큼 효과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또 주변국에 피해를 주는 근린궁핍화정책은 잘못입니다. 일본이 현명하다면 엔저정책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본은 과거 값싼 공산품으로 미국시장을 파고들었습니다. 경쟁력이 떨어진 미국은 제조업은 일본에 맡기고 IT로 전환해 또 다른 성장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문제는 지금 일본이 다시 아시아국가들에 추격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일본도 엔저정책보다는 미국처럼 산업구조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꾀해야 합니다.

▽박 연구원〓방금 말씀하신 일본을 추격하는 아시아 국가 중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중국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본의 엔저정책도 중국을 의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앞으로 중일 경제관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고사이 회장〓중국은 분명히 일본의 경쟁상대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부유해지는 것은 시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중국은 수출이 급증하고 있긴 하지만 그만큼 수입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중국과 일본이 조화롭게 분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산업전환 능력이 중국의 산업발전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면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무조건 억누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중국 경제가 침체되고 혼란스러워지면 아시아는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박 연구원〓해외 언론에서는 일본 경제가 완전히 활력을 잃어버려 끝내 가라앉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제회복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가능하다면 언제 얼마나 회복될까요. 곁들여 세계 경제에 대한 전망도 들려주십시오.

▽고사이 회장〓미국 등 세계 경제가 회복 기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일본도 다소 나아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실채권이라는 지뢰가 남아있는 한 단기회복은 어렵습니다. 지뢰 폭발 후 처리를 잘못하면 더욱 어려워지겠지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2, 3년 내 부실채권 처리, 부실기업 정리를 제대로 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어찌됐건 경제가 강하게 반전해 급상승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일본은 이제 ‘경제대국’에 집착하지 않고 저성장 속에서 안정을 찾아갈 것입니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것인가는 기술혁신의 지속성에 달렸다고 봅니다. IT혁명이 거품이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저는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믿습니다. 나노기술 바이오기술도 기술혁신의 여지가 크지요.

정리〓이영이 도쿄특파원 yes202@donga.com

이영이기자 yes202@donga.com

▼고사이 유타카▼

▽1933년 출생

▽1958년 도쿄(東

京)대 경제학부

졸업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경제기획청 경제

연구소 조사실

장, 물가조정과

장, 경제총괄 주

임연구원

▽니혼게이자이(日

本經濟)연구센터 이사장, 회장(현)

▽도요에이와(東洋英和) 여학원대학 사회과학부 교수(현)

▽일본은행 고문(현)

▽저서:‘현대금융의 동태’

‘고성장의 시대-현대 일본경제사 노트’

‘일본의 개혁-21세기 비전’ 등 다수

▼박재하▼

▽1957년 출생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

아주립대 경제학

박사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외환제도개혁위

위원

▽대통령 직속 금융

개혁위 전문위원

▽IMF협상 관련 재정경제원 자문위원

▽대통령비서실 경제구조조정기획단 반장

▽아시아개발은행연구소 연구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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