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보니]오영교/'느려도 한 우물' 佛서 배우자

  • 입력 2002년 10월 8일 18시 49분


직업상 한국에서 온 엘리트 출신 사업가들과 일을 같이할 기회가 많다. 파리에 사무실을 개설하거나 비즈니스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만남이 이루어진다.

여러 방법들을 동원해보지만 길을 찾지 못한 그들은 필자와의 첫 대면에서부터 프랑스를 욕하고 본다. “어디 이런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어. 말도 안 통하고 느려터져서 일을 할 수 있어야지.”

필자는 이곳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구조적으로 빨리빨리 일할 수 없는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은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1년쯤 지나면 적응하게 되고 3년째가 되면 느린 행정절차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이런 문화적 갈등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욕만 하고 있으면 될 일도 안 된다. 무조건 반대하기보다는 배울 것은 배우는 게 낫다.

프랑스인들은 말이 많다. 당연히 일 처리가 지연된다. 동료들끼리 모든 대화가 끝난 이후 업무를 본다. 사전 약속없이 일을 보기 위해 대기할 경우에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이곳에서 문제를 ‘빨리빨리’ 해결하려면 인간적으로 솔직해야 한다. 허풍이나 위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이는 더욱더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당당하고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 인간적 호소라야 한다.

프랑스는 구조적으로 거북이 걸음이다. 실업률이 10%나 된다. 전 정권인 사회당은 실업자 구제정책으로 주당 35시간 근무제를 적용했다. 일자리를 나눠주자는 게 기본 취지였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모든 조직마다 일손이 부족하다. 회사측에서는 사람 고용을 꺼린다. 회사부담 사회보장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법정휴가 5주 등 노동법규가 회사 운영에 부담이 된다. 즉 샐러리맨들은 기본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할 수 없다. 반면 처음은 힘들지만 한번 맺은 비즈니스는 오랫동안 유지된다.

우리는 프랑스에서 배울 것이 많다. 언젠가는 다른 나라에 추월당할 품목은 아예 투자하지 않고 외국이 따라오지 못할 첨단기술분야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다.

핵에너지, 핵 잠수함, 전투기, 고속전철, 민간 비행기 등이 이 분야들이다. 한국은 ‘빨리빨리’ 덕분에 정보기술(IT)분야에서 선진국보다 좋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를 받쳐주는 기초품목은 여전히 선진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런 기초과학이 프랑스에는 많다. 하지만 두 나라를 연결할 과학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예부터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한반도를 토끼로 표현했다. 변화하고 싶지만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프랑스를 거북에 비유했다. 이솝우화가 암시하는 토끼와 거북을 여러 각도에서 심사숙고할 때가 왔다.

우화에서는 거북이 먼저 골인하지만 현실에서 꾸준히 노력한다면 당연히 토끼가 우승한다.

오영교 프랑스 국제컨설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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