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일에 왔을 때 사람들이 사과를 껍질째 먹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의 상식은 사과는 농약을 많이 쳤으니 껍질을 두껍게 깎아내고 속만 먹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사과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지하철이나 식당에서 껍질째 서걱서걱 베어먹는다. 이들은 사람이 먹는 것에 어떻게 감히 농약을 치느냐고 반문한다. 직업의식이 발동해 유엔에서 나온 농약관련 통계를 찾아보았다. 독일은 ㎢당 0.29t의 살충제를 사용하는 데 반해 한국은 그 4.4배인 1.29t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은 산이 많으니 논밭만 비교하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농약을 사용하는 셈이다.
병원과 약국에서 약을 쓰는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자연치유력을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열살 난 딸아이 손등에 알레르기가 심하게 번져 처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며 ‘주사 한 대 놔주고 약을 지어 주겠지’라고 생각한 우리 부부는 황당한 처방전을 받고 병원문을 나서야 했다. 피부연고 하나 처방해주며 내일이나 모레도 아니고, 일주일 뒤에 다시 와 보라는 것이었다. 이런 처방으로 딸아이가 며칠 잠을 설치며 고생은 했지만, 일주일 뒤에는 말끔히 나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아마 알레르기에 대한 면역이 생겼으리라. 항생제 소비량 세계 1위라는 우리나라의 불명예가 떠올랐다.
우리가 사는 마을 근처에는 라인강이 흐른다. 이 강으로 하루에도 수십척의 화물선과 여객선이 다닌다. 지금도 여전히 라인강은 중요한 운송수단의 하나인 것이다. 강을 둘러싼 제방 또한 콘크리트가 아닌, 자연형이다. 한국 같았으면 홍수가 날 수 있으니 당연히 댐을 짓고 콘크리트 제방을 쌓자고 개발론자들이 삽질부터 했겠지만, 이곳은 강을 따라 좌우로 널찍한 저지대가 확보되어 있어 물이 불어나면 자연스레 낮은 지대로 물이 차서 강이 넓게 흐르도록 돼 있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수천년간 물이 흘러왔던 길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상책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선진국이란 무엇일까. 아니 국민들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과를 껍질째 먹을 수도, 껍질을 두껍게 깎아서 알맹이만 빼먹고도 살 수는 있다. 물길을 막지 않고 살 수도, 거대한 댐으로 물길을 막으면서 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 뼘 차이의 선택이 50년, 100년 뒤에는 인류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것이 환경문제의 특징이다.
이곳 사람들의 생각은 근본적으로 환경친화적이고 생태적이다. 현재의 물질적 정신적 행복이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고, 후손들의 몫인 지구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지속가능케 하기 위해, 지금 무엇을 결심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21세기는 환경과 건강과 평화로 국민들의 행복도가 결정되는 시대가 아닐까.
황상규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박사과정·환경운동연합 전 사무처장 grinm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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