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우리 가족은 중국 CCTV의 신년 특집 방송을 보면서 새해를 맞았다. 올해는 계미년 양띠 해다. 중국인들에게 양은 길상(吉祥)의 동물이다. 양은 무릎을 꿇고 젖을 먹기 때문에 양띠 해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효성이 지극하다고 한다. 양띠 해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어떨지 모르지만, 중국인들은 양고기를 참으로 즐겨 먹는다. 시장거리에서 쉽게 허기를 때울 수 있는 양꼬치구이에서 추운 겨울에 훈훈함을 안겨주는 양고기 샤브샤브까지 중국인의 식생활과 양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순하고 착하며 참을성이 많은 동물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양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는 비단 식생활뿐이 아니다. 유학길에 나선 남편을 따라 무작정 중국으로 오긴 했지만 이른바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한국인들이 ‘만만디’의 나라 중국에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아이구 답답해”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속을 태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처음 만만디를 느낀 곳은 병원이었다. 한국에서 1차 접종을 하고 온 예방 백신의 후속 접종을 위해 아이의 팔을 걷은 나에게 1차 때 맞은 주사약의 이름과 제조회사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전엔 접종을 해 줄 수 없다며 화를 내는 중국인 의사도 있었고, 아이가 설사를 해서 병원에 가니 변 검사를 하기 전에는 어떤 진단도 내릴 수 없다며 그 자리에서 변을 보게 하라고 해서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한번은 남편의 학비를 내기 위해 학교 행정처에 갔을 때의 일이다. 150여장이나 되는 100원짜리 지폐를 열두 번도 더 세어보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형광등 불빛에 비춰보는 것으로도 모자라 위조지폐 감식기에 한 장 한 장 150여장 모두를 넣어보는 것이었다. 결국 한 사람의 학비 지불에만 무려 20분이 넘게 걸렸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건 적건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들도 그게 당연하다는 듯 바라만 보고 있으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베이징의 왕징(望京)은 몇 년 전부터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아파트 건설 붐이 한창인 곳이다. 특이한 점은 중국인들은 아파트 전동(全棟)을 한꺼번에 지어 분양하는 우리와 달리 먼저 두 세 동을 지어 분양한 다음 그 수익금으로 바로 옆의 남은 땅에 다른 동을 짓고, 그 아파트를 모두 분양한 다음 다른 동을 또 짓고 한다. 한국에서 시공하던 아파트가 건축회사의 부도로 인해 시비에 휩싸이는 일과는 분명 대비된다.
중국인들의 만만디로 인해 때로는 화가 나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도 많았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요즘은 만만디에서도 배워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적지 않게 든다. 번거롭더라도 의료사고를 예방하고자 하는 의료진,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위조지폐는 가려내고 보자는 행정 관계자들, 그리고 부도 없이 건실하게 부를 쌓아가자는 건설업체들을 보면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점차 깨닫고 있는 것이다.
윤현선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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