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대한 이해는 그들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나라 사이에서나, 한 국가 내에서도 각기 다른 민족과 종교에 대한 철저한 상호 인정의 문화가 뿌리박혀 있다. 나아가 어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흑 아니면 백이 아니다. 제3, 제4, 제5, 그 이상의 수많은 견해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그 지분을 보장해주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공공 교통기관의 파업으로 전국이 몸살을 앓으면 시민들이 불평할 것 같아도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의 당연한 의사 표시로 받아들이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열린사회’란 남을 인정하고, 그럼으로써 나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도록 시스템으로 보장하는 사회다. 프랑스 대학의 입학 인원은 1000명인데 3학년이 되면 200명만 남는다. 이것은 열린사회가 기회의 균등을 보장할 뿐, 능력의 균등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졸업한 사람이나 졸업하지 않은 사람이나 그 나름대로 인생이 있고, 이 모두를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재 한국 사회의 고민과 갈등의 해소과정에 대한 모델이 있지 않을까.
남을 인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세계화 전략이란 한마디로 현지 경영이고, 이는 현지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성공 사례들은 모두 인식의 전환을 이룬 데서 나왔다. 이러한 인식전환 없이 벌인 한국적 경영의 비극적 결과물들을 여러 사례에서 볼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바로 옆에서 이를 보고서도 고치지 않는 ‘닫힌사회’에 있다.
한강의 기적은 우리 국민의 근면과 시대의 조류를 국가 경영으로 유도한 우수한 테크노크라트의 성공에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의 격차가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두 부문 간의 교류는 접점이 없다. 새 정부의 인사도 서열 파괴나 직급 파괴로 기존의 사다리를 깨는 형태보다는 그 그릇에 보다 많은 바람구멍을 내는 열린 인사에서 시작해야 한다.
장관 한 사람, 또는 공직자 한 사람 바꿔서는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나 우리 집단이 아니면 이 일은 하기 어렵다고 하는 인식이 현재의 한국 사회 전 부문에 걸친 갈등의 고리이자 열린사회로 가기 위해 우선 제거해야 할 장애물이다.
한국을 잘 아는 프랑스 학자 중 한 사람인 기 소르망 교수는 한국 산업계를 예로 들면서 “당신들은 제품을 팔고 있는데 이제는 문화를 팔아야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는 세계 1등 기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경쟁력은 어느 한 제품을 잘 만든다고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가 가진 총체적 에너지를 문화라는 이름으로 팔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너와 나를 인정하는 가운데 열린사회, 열린 문화를 만드는 것을 21세기 국가과제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은대웅 대우전자 프랑스 판매법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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