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선사가 읊었던 오도송(悟道頌)의 첫 구절인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에서 이런 뜻을 읽어낼 수 있다. 어찌 타향이 고향이 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곱씹을수록 사람 사는 지혜의 정수가 담긴 구절이란 생각이 든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가족과 함께 둥지를 튼 지 5개월, 상큼한 바람을 안고 찾아왔을 풍요로운 고국의 가을을 생각하니 열사의 더위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국에서 맞게 되는 대명절 추석 또한 느낌이 새롭다. 이국의 풍물과 발리 예술인촌의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예술성을 키우고, 서예의 세계성을 추구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나지만 고국의 풍습과 고향의 정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추석을 일주일 남겨둔 4일 한인회가 운영하는 ‘한국부인회’에 강의를 나가보니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다음주에는 차례 준비를 해야 하니 휴강해 달라고 부탁한다. 모두 고향은 떠났어도 고향의 풍습에서도 떠나온 것은 아닌가 보다.
불과 몇 개월간이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의 삶에서 쉽게 느껴진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대책 없는 무질서와 거슬림 없는 동화(同化)다. 대책이 무엇일지 감감한 무질서와 어쩔 수 없는 순응과 동화, 이는 분명 기후와 종교, 정치의 영향일 것이다. 사회 전반에 스민 이러한 특성을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곳’이라고 하는 일반의 평가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식민지배의 역사 탓에 외국인을 ‘착취자’로 여기는 정서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인도네시아는 천혜의 자원이 풍부하고 순박한 국민성을 지닌 나라다.
이곳에서 3만여명의 한인들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기후도 문물도 민족성도 다른 남의 나라에서 과연 어떤 모습의 삶이 바른 것일까. 만해 선사의 깨우침처럼 이곳을 고향으로 여기고 이 사회와 능동적 동화를 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이미 이곳에 사는 한국인 상당수는 이곳 문화에 잘 동화해 성공을 일궈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러한 성공을 좀먹는 현상이 있어서 마음이 아프다. “한국인은 어쩔 수 없어”라고 하는 자조와 배타성, 저질 코리안 소리가 그것들이다. 또한 “인도네시아가 살기에는 좋다”고 말하면서 이 사회를 무시하여 과시하려 들거나 국민총생산(GNP)이 낮은 후진국에서 사는 것이 체면에 손상이 간다는 생각들이 있는 것도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뜻있는 이들이 있어 꾸준히 한인사회를 아우를 캠페인과 그 주체로서 문화원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젠 문화적 접근이 가장 중요함을 아는 지혜로움이라 하겠다.
기왕 사는 것, 어디에 살더라도 고향 삼아 살다 보면 모든 갈등이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세계는 이미 가까워질 대로 가까워져 있다. 사는 곳을 고향처럼 가꾸고 살아가는 삶 속에서 오히려 자기의 주체성도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가 있는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어떤 추석을 맞이하고 있을까. 그들도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잘 간직하며 한국에서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까. 이국에서의 추석을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손인식 在인도네시아·서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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