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반면 대다수 독일인에게 직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사적인 의미가 끼어들 틈이 거의 없다. 독일에서 직장생활 하는 한국인들에게서 “삭막하다”, “재미없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3년 전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내가 소속된 팀이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었다. 팀원 중 한 명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 힘든 일도 잘 끝났는데 저녁에 한잔할까요”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팀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수첩을 꺼내며 “약속을 언제로 정할까요? 다음 주 혹은 다음 달?”이라고 묻는 것이다. 당연히 당일 저녁을 생각했던 나에게 이런 독일인들의 ‘냉정함’은 놀라운 것이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형제를 잃은 동료에게 ‘본인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모르는 척 지나가야 했던 적도 있다.
이처럼 독일 직장에서는 한국에서와 같은 ‘끈끈하고 즉흥적인’ 친목 문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직장은 결국 이익창출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 아니던가. 때론 지나치게 인간적인 정(情)을 중시하는 한국의 직장문화에 공적 업무를 최우선시하는 독일인의 사고방식을 가미하면 좋을 듯하다.
독일 직장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중시하지만 삭막하지는 않은 곳이다. 그들 나름대로 축하의 문화, 초대의 문화가 있으며 돈독한 동료애도 있다.
최근 30년 근속을 끝내고 정년퇴직하는 회사 동료의 송별식을 가졌다. 재미있는 것은 송별식을 준비하는 것이 본인의 몫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초대의 글을 보내고 음식을 마련했다. 초대받은 사람들의 몫은 ‘봉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조그만 봉투가 손에서 손으로 전해졌다. 참석자들은 그 봉투에 원하는 만큼의 돈을 넣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전 몇 개를 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모아진 돈으로는 주인공의 개인적 취향에 맞는 선물을 준비했고 이렇게 준비된 선물은 나중에 본인에게 전달됐다. 주는 이는 부담 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고, 받는 이는 그 따뜻한 마음에 고마워하는 이들의 문화에는 소박함이 배어 있다.
나도 처음 독일 땅을 밟았을 때는 계획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생각하거나 행동에 옮길 수 없는 경직성이 다소 답답하게 느껴졌다. 또 너무 깔끔하게 자신의 것만 챙기는 것 같아 인간미가 없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방식 속에도 인정이 넘치고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나도 그만큼 ‘재미없는 인간’으로 바뀐 것일까?
황지나 독일 바이엘사 아태지역 홍보담당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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